미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발효 이후 가시화된 공급망 재편의 물결은 올해 '바이오USA'의 행사장 지형도 바꿔놨다. 중국 기업들의 자리가 눈에 띄게 줄었고, 중국관 규모도 위축됐다.
반면 미국 주정부관은 늘었다. '탐지부터 대응까지, 생물방어를 위한 미국 정부와의 협력(Partnering with the U.S. Government to Support Biodefense from Detection to Response)'라는 주제로 이어진 세션들에서 미국 정부와 산업계 인사들은 "미국은 바이오 공급망을 혼자 재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은 이제 생산 거점 확보를 넘어 동맹 기반의 '분산형 바이오 제조 체계' 구축으로 전략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한국이 생산 거점을 넘어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전략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NSCEB '백악관 바이오 컨트롤타워' 권고…"동맹국 협력 체계화"
미국 의회 산하 자문기구인 신흥바이오기술국가안보위원회(NSCEB)의 알리나 멜타우스 수석보좌관은 22일(현지 시각) 바이오 공급망을 "단일 정책이나 단일 기관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며 "정책 입안자들이 모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각자의 역할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출범해 올해 말 활동을 종료하는 NSCEB는 6대 권고안 중 하나로 '동맹국과의 바이오 기술 협력 극대화'를 제시했다. 이와 별도로 백악관 내 '국가 바이오 조정 사무국(National Biotechnology Coordination Office)' 설치도 권고했다.
멜타우스 보좌관은 이 조직이 미 보건첨단연구계획국(ARPA-H)·전략대비대응국(ASPR)의 투자와 국무부의 상업·규제 외교를 단일 창구에서 연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조직이 설립될 경우, 동맹국과의 협력 창구도 보다 체계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위원회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각국 정부가 바이오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보고 있는지 직접 조사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기존 협력 체계도 분석했고, 위원들과 직원들이 직접 해외를 방문했다"며 공동 조달, 연구 데이터 공유, 대학 간 협력 등 새로운 파트너십 모델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필수의약품 공급망 재건 나선 미국…"다국적 분업 지향"
미 보건부(HHS) 산하 전략대비대응국(ASPR) 얼린 조이너 부차관보는 공급망 재편 현주소를 수치로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미 육군과 공동 수립한 86개 필수의약품 목록은 이후 177개로 확대됐다"며 "최종 완제의약품 제형은 국내 기반이 비교적 양호하지만 핵심출발물질(KSM) 생산은 여전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많은 KSM이 석유화학 기반인 만큼, 미 국방부가 필요로 하는 에너제틱(energetics) 소재와 겹치는 기업을 연계하는 다목적 공급망 구상도 언급했다.
국제 협력 전략과 관련해서는 인도와 멕시코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인도의 제네릭 원료의약품(API) 제조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원한다며 "우리가 원하는 유형의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멕시코와는 미국이 생산하지 않는 API·KSM 품목을 분담하고, 위기 시 상호 공급이 가능한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서든'…핵심 기술은 미국서 확보"
미 보건복지부 산하 연구비 지원 기관인 보건첨단연구계획국(ARPA-H)의 존 시엘 박사는 공급망을 "출발 물질과 생산 능력이 동시에 존재해야 완성되는 구조"라고 정의하며 "어느 한쪽이 부족하면 시스템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ARPA-H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출발 물질의 '재구상'이다. 시엘 박사는 밀(Wheat) 기반 원료와 무세포 추출 기술을 활용해 소분자·대분자 API를 합성하는 '밀 프로젝트'를 예시로 들었다. 무세포 추출 기술 자체는 오래됐지만 대규모 확장이 불가능했는데, ARPA-H가 이 한계를 돌파하는 데 투자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분산형 제조와 다품목 생산이다. 고비용 중앙집중형 GMP(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시설 대신, 유전자 치료제와 리보핵산(RNA) 기반 의약품을 소규모로 유연하게 생산하는 플랫폼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셋째는 희귀질환에서 대량 생산까지, 동일한 기술을 '스케일업'과 '스케일아웃' 양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다. 그는 "긴급 상황에서는 이 기술이 두 방향 모두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엘 박사는 국제 협력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서든 나온다. 동맹국 파트너가 함께 참여할 수 있다면 더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서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선을 그었다. 국제 협력에는 열려 있지만, 핵심 기술 역량은 자체 확보하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