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여 있던 큐라클(365270)의 1조6000억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 상대방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기업가치 재평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큐라클의 망막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도입한 미국 메멘토 메디슨스(Memento Medicines)의 투자자로 프랑스 사노피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사노피벤처스를 비롯해 미국·유럽 바이오 투자업계의 핵심 플레이어들이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큐라클이 망막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MT-103'을 기술 이전한 뉴코(NewCo·신설법인) 메멘토에는 사노피벤처스와 미국 RA캐피탈, 유럽 포비온(Forbion) 등 글로벌 핵심 투자기관들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사회 역시 사노피벤처스와 RA캐피탈, 포비온, 아베고 등 글로벌 바이오 투자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됐다.
큐라클은 지난 5월 메멘토와 MT-103의 글로벌 개발·상업화를 위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 규모는 최대 1조6000억원이다. 아직 전임상 단계 후보물질이지만 선급금 116억원을 확보하며 대형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큐라클은 이 가운데 47억원의 현금을 수령했으며 11억원 규모의 메멘토 지분도 확보했다.
통상 수조원 규모 기술수출은 글로벌 제약사나 임상 개발 경험이 풍부한 바이오텍과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메멘토는 큐라클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뉴코로 공개된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시장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때문에 계약 규모에 비해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했다. 그러나 글로벌 톱티어 투자기관들이 대거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장의 시각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뉴코는 특정 기술이나 자산을 중심으로 별도 회사를 설립한 뒤 투자금을 유치해 신약 개발과 상업화를 추진하는 모델이다. 미국 모더나 역시 창업형 벤처캐피털(VC)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이 설립·육성한 대표적인 뉴코 사례로 꼽힌다.
RA캐피탈과 포비온은 이미 국내 바이오텍 자산을 기반으로 한 뉴코에 투자한 이력이 있다. 두 투자사는 앞서 2024년 아이엠바이오로직스의 후보물질을 도입한 네비게이터 메디슨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네비게이터 메디슨 역시 한국 바이오텍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설립된 뉴코다.
특히 업계는 사노피벤처스의 참여에 주목하고 있다. 사노피벤처스는 단순 재무적 투자보다 전략적 목적의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사노피와의 공동개발 또는 추가 기술이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자 공개가 단순한 신뢰도 회복을 넘어 차세대 망막질환 치료제 경쟁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MT-103이 진출한 망막질환 치료제 시장이 '아일리아'와 '바비스모'를 거쳐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은 미국 리제네론과 독일 바이엘의 아일리아가 개척한 뒤 스위스 로슈의 바비스모가 빠르게 추격하는 구도다. 습성 황반변성과 당뇨병성 황반부종 치료에 사용되는 아일리아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를 억제하는 원리로 연간 약 12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뒤이어 등장한 바비스모는 VEGF와 노화를 자극하는 인자(Ang-2)를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항체다. 염증과 혈관 누출, 비정상적인 혈관 성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 투약 주기를 기존 1~2개월에서 최대 16주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출시 이후 빠르게 성장하며 차세대 치료제로 자리 잡았다.
업계는 이제 그 다음 세대로 혈관 손상과 혈액 누출을 막아주는 '타이(Tie)2 수용체' 기반 치료제에 주목하고 있다. Tie2는 혈관을 안정화하고 손상된 미세혈관을 정상 상태로 회복시키는 신호 전달 체계다. 단순히 비정상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혈관 자체를 정상화하는 접근법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가장 앞선 3세대 치료제 후보로는 미국 머크(MSD)의 'MK-8748′이 꼽힌다. MSD는 최근 MK-8748의 글로벌 임상 3상에 착수했다. 앞선 임상 1·2a상에서는 망막 내 부종과 혈관 누출 감소, 최대 교정시력 개선, 망막 두께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시장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MK-8748는 국내 바이오텍 인제니아테라퓨틱스가 개발해 2022년 아이바이오에 기술이전한 후보물질이다. 이후 MSD가 2024년 아이바이오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개발 단계에 진입했다. 업계에서는 같은 계열 후보물질인 MK-8748이 Tie2 기반 치료제의 가능성을 입증할 경우 후발 주자인 MT-103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큐라클이 메멘토에 기술이전한 MT-103 역시 VEGF 억제와 함께 Ang-2·Tie2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는 이중항체로 개발되고 있다. 회사 측은 전임상 연구에서 아일리아와 바비스모 대비 우수한 혈관 누수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메멘토 투자자 구성이 공개되면서 큐라클 'MT-103′도 단순한 기술수출을 넘어 차세대 망막질환 치료제 경쟁에 참여한 후보물질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며 "뉴코는 스핀오프(spinoff·분사)나 JV(합작회사) 형태로 신약 기술을 상용화하는 모델로, 개발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외부 투자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치하기 용이해 향후 국내 업계에서도 새로운 기술사업화 전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