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바이오기업 젬백스앤카엘(젬백스(082270))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젬백스앤카엘의 최대 주주인 김상재 고문(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남 회장이 경영과 사업화, 시장 소통을 맡는 역할 분담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경영 체제 개편으로 풀이된다.
젬백스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남경필 회장 취임식·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남경필 회장은 "젬백스는 숨어 있는 보석 같은 회사"라며 "좋은 연구 성과를 시장에 제대로 알리고 기업 가치를 높여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젬백스는 최대 주주인 젬앤컴퍼니와 김상재 고문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남 회장에게 위임됐다고 공시했다. 남 회장 개인 지분은 0.13% 수준이지만 최대 주주 측 의결권을 위임받아 실질적인 경영책임을 맡게 됐다.
정계 출신 인사가 기업 경영 전면에 서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에 대해 남 회장은 "의결권 위임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책임 경영 구조"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이석준 대표, 문형식 최고전략책임자(CSO) 등 최고의 전문가 팀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함께 토의해 결정하되, 모든 의결권을 가지고 책임지며 회사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남 회장은 경영 방향 키워드로 '오픈(Open)', '델리게이션(Delegation)', '트러스트(Trust)'를 제시하며, 투명한 소통과 정보 공개, 전문가 중심의 권한 위임, 주주와 시장의 신뢰 구축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리더십 전환을 택한 창업자 김상재 전 회장은 "젬백스가 연구 논문만 쓰는 회사라고 오해받기도 했지만, 이제 꽃봉오리가 맺힌 단계에 왔다"며 "이 꽃을 활짝 피울 적임자로 능력과 결단력을 갖춘 남경필 회장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필터·신약 '투트랙'…GV1001 개발 승부수
젬백스의 사업 구조는 크게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용 케미컬웨어 필터 사업을 하는 카엘(환경사업부)과 신약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젬백스(바이오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이석준 젬백스 대표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신약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젬백스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카엘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700억원, 순이익은 약 174억원을 기록했다.
젬백스의 핵심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은 GV1001이다. 이날 행사에서 전문가들은 GV1001의 과학적 원리와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먼저 이재홍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GV1001의 작용원리(MoA)와 진행성핵상마비(PSP·Progressive Supranuclear Palsy) 치료 가능성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GV1001이 비정상 타우 단백질 축적, 신경염증,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 등 신경퇴행성질환의 주요 병리 기전을 동시에 조절하는 다중기전 약물"이라고 설명했다.
GV1001이 겨냥하고 있는 주 적응증인 PSP는 보행장애와 안구운동 장애 등을 유발하는 희귀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현재 해당 적응증으로 승인된 치료제는 없다. 회사는 GV1001을 퍼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초 신약) 신약으로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문형식 젬백스 CSO(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GV1001의 PSP 국내 임상 2상 및 연장 연구 결과에 대해 "초기 임상에서는 환자 수가 적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질환 진행 속도가 빠른 일부 환자군(Richardson syndrome)에서는 의미 있는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회사에 따르면 진행성핵상마비(PSP) 환자를 장기간 추적 관찰한 결과, GV1001 투여군은 외부 대조군(위약군) 대비 질환 진행 속도가 늦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매칭 조정 간접 비교(MAIC) 분석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문 CSO는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3상과 글로벌 임상 등 다음 단계 개발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GV1001의 적응증을 알츠하이머병과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등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PSP 치료제의 조건부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며, 미국 등 해외에서는 PSP를 비롯한 신경퇴행성질환 대상의 글로벌 임상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류훈 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는 "ALS 동물모델에서 GV1001 투여 시 운동기능 개선과 생존 기간 연장 효과를 확인했다"며 "향후 임상 진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회사는 GV1001 원천 물질 특허는 만료됐지만 PSP 관련 핵심 용도 특허는 2042년까지 보호된다며, PSP 등 신경퇴행성 질환 관련 용도 특허와 희귀의약품 지정(ODD)을 통해 시장 독점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신뢰 회복·기관 투자 유치로 임상 속도"
임상시험 진행 자금 조달을 위해, 기관 투자자 중심의 투자 유치 확대 계획도 내비쳤다.
남 회장은 "그간 젬백스의 현실은 개인 투자자 중심의 자금 확보였다"고 짚으며, "새로운 경영 체제에서는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즉각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할 경우 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도 검토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증자 등을 통해 축적된 자본으로 PSP 임상을 성공 궤도에 올린 후 루게릭병 등 차세대 파이프라인으로 자금을 확장 연계하겠다는 전략이다.
남 회장은 "그동안 주주와 시장, 자본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며 "정기적인 IR과 주주 간담회를 통해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약은 증명으로, 회사는 신뢰로 도약하겠다"며 "젬백스의 훌륭한 연구 성과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탄탄한 가교 구실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 곽재선 KG그룹 회장, 홍재성 JS코퍼레이션 회장, 박성찬 다날그룹 회장, 김대헌 호반그룹 총괄사장,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전영태 분당서울대병원장 등 정·재계와 의료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