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막을 내린 미국당뇨병학회(ADA 2026) 연례학술대회. 올해 학회의 화두는 단연 비만이었지만, 경쟁의 문법이 달라졌다. 더 이상 "GLP-1을 갖고 있냐"가 아니라 "어떤 GLP-1이냐"를 묻는 흐름이 포착됐다. "얼마나 빼주냐"에서 "어떤 동반질환을 함께 잡냐"로, "주 1회 주사냐"에서 "월 1회도 가능하냐"로 좌표가 이동했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조선일보 DB

◇'최고 감량률' 넘어 수면무호흡증까지…릴리가 제시한 다음 전장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역시 일라이 릴리였다.

이 회사의 '레타트루타이드'는 글루카곤·GIP·GLP-1 세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삼중작용제로, 최근 임상 3상에서 현존하는 어떤 약물보다 높은 체중 감소 효과를 기록했다. 80주 기준 최대 28.3%의 체중 감소 효과를 입증했고, 환자의 3분의 1은 BMI 25 이하의 정상 체중에 도달했다.

이번 학회에서 릴리가 특히 강조한 것은 감량 수치보다 동반질환 개선 효과였다. 무릎 골관절염과 수면무호흡증 증상이 개선됐고, 중성지방과 비HDL 콜레스테롤 등 심혈관 위험인자도 감소했다. '체중만 줄이는 약'이 아니라 '비만이 유발하는 여러 병을 함께 잡는 약'으로 포지셔닝하겠다는 전략이 읽힌다.

다만 내약성이 발목을 잡았다. 12mg 고용량군에서 11.3%가 이상반응으로 치료를 중단했고, 25.3%가 구토를 경험했다. 감량 효과는 압도적이지만, 장기간 복용이 필요한 비만 치료 특성상 실제 처방 현장에서는 효능 못지않게 내약성이 중요하다.

미국 투자은행 윌리엄블레어는 레타트루타이드의 내약성 프로파일을 고려할 때 고도비만 환자 중심으로 사용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젭바운드(국내명 마운자로)'는 효능과 내약성의 균형 측면에서 여전히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의 셰흐로즈 마흐무드 애널리스트도 레타트루타이드의 '게임체인저'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젭바운드나 위고비에 익숙해진 환자와 의사들이 많다는 점에서 시장 침투 속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방간 잡고 근손실 줄이고…'체중 감량의 질' 내세운 베링거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이 덴마크 질랜드 파마로부터 권리를 도입해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를 진행 중인 '서보두타이드'도 의미있는 데이터가 나왔다.

서보두타이드는 글루카곤과 GLP-1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작용제로, 비만 단독 또는 간섬유증을 동반한 대사기능장애 관련 지방간 질환(MASLD) 환자를 겨냥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앞서 4월에는 76주 기준 체중 감소 16.6% 대 위약군 3.2%라는 '위고비급 효과' 데이터가 공개됐다.

이번 학회에서는 체성분과 간 지방 분석이 추가로 공개됐다. 서보두타이드는 체중 감소의 대부분이 지방 감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고 용량에서도 근육 손실은 전체 체중 변화의 10.8% 수준에 그쳤다. 내장지방은 최대 34%, 간지방은 최대 63.1% 감소해 체성분 개선 효과도 확인됐다.

간 특화 임상에서는 투여군의 84.2%가 간 지방의 30% 이상 상대적 감소를 달성했고, 61%에서 간 지방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위약군에서는 각각 24.3%, 5.7%에 머물렀다. 글로벌데이터는 서보두타이드가 2028년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내약성 문제가 등장했다. 위장관 이상반응에 의한 투약 중단율이 서보두타이드군 19%로, 위약군 2.9%의 여섯 배에 달했다. 릴리의 레타트루타이드와 마찬가지로 향후 상업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에크노글루타이드' 임상 연구 책임자 리농 지(Linong Ji) 베이징대 인민병원 교수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당뇨병학회(ADA 2026) 연례학술대회 기간 포스터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HK이노엔

◇같은 GLP-1, 다른 작동 방식…위고비 넘보는 中 사이윈드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시장을 양분하는 사이, 중국 바이오텍의 추격도 본격화됐다.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는 이번 학회 후기 초록(Late-Breaking Abstract)을 통해 차세대 GLP-1 계열 후보물질인 '에크노글루타이드'가 '위고비'와의 직접 비교 임상에서 더 높은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중국 17개 연구센터에서 비만 환자 1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두 약물을 동일한 2.4mg 용량으로 주 1회 투여한 결과, 20주 시점 체중 감소율은 에크노글루타이드가 12.8%, 위고비가 9.5%였다. 체중이 10% 이상 감소한 환자 비율도 각각 74%, 40%로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에크노글루타이드는 기존 GLP-1 수용체 작용제와 같은 표적을 겨냥하지만, 세포 내 신호전달 경로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cAMP 편향 GLP-1 수용체 작용제'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회사 측은 이번 결과가 해당 기전의 임상적 우위를 보여주는 첫 직접 비교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이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수치 자체보다 시장 논리에 있다. 이미 위고비와 젭바운드가 자리 잡은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존재감을 확보하려면 단순히 비슷한 효능이 아니라 직접 비교 임상에서 차별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개발·상업화 권리는 HK이노엔(195940)이 보유하고 있다. HK이노엔은 2024년 사이윈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뒤 비만과 당뇨병 적응증으로 국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설은영 지투지바이오 부사장이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당뇨병학회(ADA 2026) 연례학술대회 기간 포스터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지투지바이오

◇장기지속형 제형·사중작용제…K바이오의 '차별화' 승부수

해외 빅파마들이 후기 임상 데이터로 경쟁하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장기지속형 제형(지투지바이오(456160), 인벤티지랩(389470))과 차세대 다중작용제(대원제약(003220)과 팜어스바이오사이언스) 전략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투지바이오는 자체 약물전달 플랫폼을 활용해 '카그리세마(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카그릴린타이드)', '젭바운드(터제파타이드)' 등을 월 1회 투여 가능한 피하주사 제형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인벤티지랩 역시 세마글루타이드와 터제파타이드 기반 월 1회 주사제 전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두 회사 모두 독자 신약 개발보다 플랫폼 기술의 기술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원제약과 팜어스바이오사이언스는 GLP-1, GIP, 글루카곤에 가스트린까지 더한 사중작용제 개발 전략을 소개했다. 릴리의 레타트루타이드(삼중작용제)보다 한 단계 더 복합적인 기전이다. 체중 감량뿐 아니라 췌장 및 간 기능 개선을 노린 접근으로, 향후 임상 데이터가 경쟁력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비만약 경쟁은 체중을 얼마나 더 줄이느냐가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비슷한 수준의 감량 효과를 전제로 동반질환 개선이나 복약 편의성, 유지요법 전략까지 함께 입증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