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방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4일 오전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미국이 중국 유전체 분석 기업 BGI와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앱텍(WuXi AppTec)을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포함했다. 중국은 항체·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첨단 바이오기술의 해외 이전 규제를 검토하고 나섰다.

희토류와 반도체를 두고 벌인 미·중 패권 경쟁이 바이오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반사이익 기대가 나오는 반면, 새로운 경쟁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美, BGI·우시앱텍 '중국 군사기업' 지정

미국 국방부는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내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활동하는 '중국 군사기업(Chinese Military Companies)' 188개 명단을 홈페이지와 연방관보를 통해 공개했다.

'1260H 리스트'로 불리는 이번 명단에는 알리바바, 바이두, BYD 등 중국 대표 기업들과 함께 바이오 분야에서는 BGI 그룹과 MGI테크(Tech), 우시앱텍이 포함됐다.

미국 국방부는 BGI 그룹이 중국 인민해방군(PLA)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으며 중국 공업정보화부·인민행방군과도 연계돼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 정부의 과학·기술·산업 지원을 받아 중국 방위산업 기반에 기여하는 '군민융합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중국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연구개생산(CRDMO) 기업인 우시앱텍은 즉각 반발했다. 우시앱텍은 "자사는 30개국 이상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상장기업"이라며 미국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이번 조치가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최종 통과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행정기관이 '우려 바이오기업'이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장비와 서비스를 조달·계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국방부가 매년 발표하는 1260H 리스트 기업은 우려 바이오기업 지정의 핵심 기준 중 하나다. 관리예산국(OMB)은 국방수권법 발효 후 1년 이내 우려 바이오기업 명단을 공표해야 한다.

미국 뉴저지에 있는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의 의약품 제조시설 전경. /우시바이오로직스 홈페이지

생물보안법 표적이 되면 중국 기업으로선 사실상 미국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다.

생물보안법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자회사와 모회사, 계열사, 승계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시앱텍에서 2017년 분사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가 향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중국 바이오 산업 견제는 단순히 특정 기업 제재를 넘어 투자와 기술 협력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지난 2일 국가전략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제약·바이오 공급망이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음을 냈다.

미국외교협회는 "미국이 바이오 공급망을 반도체와 같은 국가안보 자산으로 취급해야 한다"며 "미국 내 제조 역량 확대와 동맹국 중심 CRDMO 생태계 구축, 바이오 제조 인력 양성 등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中 산업 육성 강화·핵심 기술은 단속

중국은 신약 개발과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임상·허가 제도를 유연화하는 한편, 첨단 바이오기술과 임상 데이터의 해외 이전에는 장벽을 높이는 '개방과 통제' 전략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지난해 9월 의약품관리법 시행 규정을 개정해 임상시험 신청서 심사 기간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줄였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말 일부 제약사들과 비공개 협의를 진행하며 첨단 바이오기술의 해외 이전 규제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체 기술, 저분자 표적치료제 기술, 소핵산(siRNA) 치료제 기술, 세포·유전자 치료 기술 등 4개 바이오기술을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바이오 기술 경쟁력과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중국 정부가 관련 정책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다.

올해 1분기 중국 신약 사업개발(BD) 거래 규모는 총 614억달러(93조원)를 기록해 2024년 연간 거래 규모(590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자국의 첨단 플랫폼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중국이 글로벌 바이오 산업에서 '연구개발 아웃소싱 기지'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조치는 해외 기술 수출에 의존하는 바이오 기업들의 생존과 사업 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해당 규제가 이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있다.

3월 31일(현지 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에서 열린 인수 완료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 앞줄 다섯 번째부터 강경화 주미한국대사,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 에이프릴 델라니 미국 연방하원 의원. /삼성바이오로직스

◇K바이오 반사이익 볼까

바이오 산업이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전장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미국 기업들이 규제 리스크를 피하고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롯데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068270), 에스티팜(237690) 등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CDMO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의 공급망에서 배제될 경우 공급망 다변화 전략과 맞물려 국내 CDMO 기업들의 대규모 수주 확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미국 매출이 약 2조원 규모에 달하는 만큼 해당 물량의 일부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중국 기업 배제 자체가 아니라 자국 중심의 바이오 공급망 구축에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 기업 제재와 함께 바이오 공급망을 미국 내로 재편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며 "특히 트럼프 정부가 관세와 안보 규제를 동시에 활용해 생산기지를 해외에 둔 미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기업에도 현지 생산과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수주 기회가 확대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 중심 생태계 구축에 나서면서 경쟁 환경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반도체가 국가안보 자산으로 재편된 것처럼 바이오 역시 안보 산업으로 인식되는 흐름이 짙어지고 있다"며 "기업 간 경쟁뿐 아니라 국가 간 공급망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