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뷰티기업인 로레알이 미국 자산운용사와 함께 국내 리보핵산(RNA) 기술 기업 올릭스(226950)의 11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투자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지난해 공동 연구 계약에 이어 직접 지분 투자에 나선 만큼 업계는 차세대 탈모·모발 관리 기술에 대한 로레알의 전략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릭스는 전략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약 1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다. 이 가운데 로레알 그룹의 벤처투자 펀드 볼드(BOLD)는 약 105억원을 투자해 신주 7만여 주를 배정받고, 미국 자산운용사 와이스 에셋 매니지먼트는 브룩데일 글로벌 오퍼투니티 펀드와 브룩데일 인터내셔널 파트너스를 통해 약 1002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로레알의 이번 지분 투자는 지난해 6월 체결한 공동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양사는 올릭스의 짧은간섭 리보핵산(siRNA) 기술을 활용해 피부·모발 분야 공동 연구에 착수했다. 올릭스가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로레알은 제품 개발과 상업화 측면에서 자문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업계는 로레알이 공동 연구에 이어 직접 투자자로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 검토를 넘어 올릭스의 연구 성과와 사업화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행보라는 평가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양사의 전략적 파트너십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siRNA는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 역할을 하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선택적으로 제거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질병이나 노화, 탈모를 유발하는 단백질 생산 자체를 차단할 수 있어 차세대 유전자 치료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탈모 분야에서는 안드로겐성 탈모의 주요 원인인 안드로겐 수용체(AR)와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관련 신호를 유전자 단계에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존 탈모 치료제가 호르몬 생성이나 작용을 억제하는 방식이라면, siRNA는 탈모를 유발하는 유전자 신호 자체를 차단하는 접근법이다.
현재 siRNA 기반 탈모 치료제는 대부분 임상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DHT 생성 감소와 모발 성장 촉진 효과가 확인되면서 차세대 탈모 치료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로레알은 탈모·모발 분야 신제품 상업화를 위해 수년간 전 세계 바이오벤처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로레알이 최종적으로 올릭스를 선택한 배경에 회사의 독자적인 siRNA 플랫폼 기술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올릭스의 경쟁력은 자체 개발한 '비대칭 siRNA' 플랫폼에 있다. 회사는 RNA 간섭 기술을 기반으로 유전자 억제 효율을 높인 비대칭 siRNA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존 siRNA 치료제의 한계로 꼽히는 세포 내 전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소 투여 치료제 개발 플랫폼인 '자가전달 비대칭 siRNA' 플랫폼도 개발했다.
현재 호주에서 임상 1b·2a상을 진행 중인 안드로겐성 탈모 치료제 후보물질 'OLX104C' 역시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OLX104C는 월 1회 투여 방식으로 안드로겐 수용체 발현을 감소시켜 탈모를 유발하는 호르몬 신호를 차단하는 기전이다. 회사는 기존 DHT 억제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성기능 저하나 우울감 등 호르몬 관련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뷰티 기업인 로레알의 사업 특성을 고려할 때 올릭스의 기술이 신약 개발보다는 기능성 헤어케어 제품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바르는 크림이나 샴푸, 두피 에센스 등 기능성 모발 화장품에 RNA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존 화장품이 피부와 모발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RNA 기술은 탈모와 노화의 원인을 유전자 단계에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장기적으로는 RNA 기술이 적용된 탈모 완화 화장품과 두피 관리 제품 등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이브 벌루치(Guive Balooch) 로레알 오픈 이노베이션·증강 뷰티 부문 글로벌 총괄자는 "이번 전략적 협력은 올릭스의 siRNA 플랫폼 기술과 로레알의 생물학·기술·제형 분야에서 100년 이상 쌓아온 혁신 역량을 결합하는 것"이라면서 "첨단 생물학과 견고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수준의 성능을 제공하고 미래 뷰티 산업 혁신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릭스는 지난해 미국 일라이 릴리와 기술 협력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로레알과 공동 연구 및 투자 유치까지 이끌어내며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