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리 점심을 먹어 치우고 있다."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복지부 장관, 4월 의회 청문회 中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6)은 세계 최대 암 학회답게 4만4000명이 넘는 종양학자와 제약사 관계자가 몰려들었다. 매년 이 학회에서 나온 임상 데이터가 암 치료의 표준을 바꾸고 수조원 규모의 주가를 움직인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다만 충격의 진원지가 예상과 달랐다.
◇최고 무대 장악한 中 이중항체 신약…'키트루다' 아성 위협
ASCO에는 '플레너리 세션(Plenary Session)'이라는 자리가 있다. 학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권위 있는 발표 무대로, 수천개 연구 중 단 4~5개만 선정된다. 올해 그 자리에 중국 바이오기업 아케소의 폐암 신약 '이보네시맙'이 이름을 올렸다. 중국에서만 환자를 모집한 임상시험 결과가 이 자리에 선정된 것은 ASCO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보네시맙은 두 가지 기전을 하나의 항체에 결합한 이중항체다. 면역세포에게 암을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종양이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혈관을 차단한다. 현재 글로벌 항암제 시장을 지배하는 머크(MSD)의 '키트루다'를 넘어설 차세대 주자로 업계가 주목해온 약물이다.
이번 ASCO에서 공개된 임상 3상(HARMONI-6) 결과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진행성 편평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이보네시맙·항암화학요법 병용군의 사망 위험은 비교군보다 34% 낮았다.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은 27.9개월로 비교군(23.7개월)을 웃돌았다.
글로벌 판권을 보유한 서밋테라퓨틱스는 같은 현장에서 전이성 대장암 임상 2상 결과(질병통제율 100%, 객관적반응률 70.8%)도 내놨다. 발표 다음날 홍콩 증시에서 아케소 주가는 장중 12.3% 급등했다.
다만 신중론도 제기됐다. 존스홉킨스대 줄리 브래머 교수는 해당 임상의 추적기간이 약 2년에 불과하고, 75세 이상 고령층·여성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으며, 중국과 미국의 환자 특성·치료 환경 차이가 결과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FDA는 오는 11월 이보네시맙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中의 정면승부…韓 기업들은 '미충족 의료 수요' 틈새 공략
중국 기업들이 기존 표준 치료제와 정면 승부를 택했다면, 한국 기업들은 치료 공백이 남아 있는 영역을 파고드는 전략을 선택했다. 엔허투 치료 이후(보로노이(310210)), 면역항암제 불응 환자(지아이이노베이션(358570)), 전이성 췌장암(온코닉테라퓨틱스(476060))처럼 기존 치료의 한계가 뚜렷한 시장이 공통된 타깃이다.
①'엔허투 이후' 시장 정조준…보로노이의 'VRN10′ 임상 1a상
HER2 양성 암 치료의 현재 최강자는 아스트라제네카·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다. 문제는 엔허투로 치료받고도 암이 다시 자라는 환자들이다. 이들에게 마땅한 후속 치료 옵션이 없다. 보로노이의 'VRN10′은 바로 그 빈자리를 노린다.
HER2 양성·변이 고형암 35명 대상 임상 1a상 중간 결과에서 HER2 변이 환자군 객관적반응률(ORR) 43%, 질병통제율(DCR) 86%가 나왔다. 엔허투 치료 경험이 있는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DCR 83%, 엔허투 후 진행된 HER2 변이 폐암 환자에서도 부분관해(PR)가 확인됐다.
암 치료의 난제로 꼽히는 뇌전이 환자에서도 두개내 DCR 75%가 확인됐다. 뇌는 약물 침투가 어려운 조직인 만큼, 업계에서는 향후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②키트루다 실패 뒤에도, 키트루다와 함께…지아이이노베이션의 'GI-101A' 병용 1상
이번 ASCO에서 국내 기업 중 특히 관심을 모은 발표다. 선택받은 연구에만 주어지는 '래피드 오럴(Rapid Oral)' 세션으로 선정됐고, 이뮤노사이토카인 분야 연구 중 유일했다.
모든 표준 치료에 실패한 4차 치료 단계 말기 고형암 환자에서 권장 2상 용량(0.3mg/kg) 기준 ORR 55%, DCR 82%가 나왔다. 통상 4차 치료제의 ORR이 10~20% 수준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최대 22.3개월 무진행생존(PFS) 유지 사례도 확인됐다.
핵심은 기존 면역항암제에 불응하거나 재발한 환자에게 키트루다를 다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전체 암 환자의 70%에 달하는 면역항암제 불응·재발 환자군이 잠재 시장이다. 회사 측은 "발표 직후 글로벌 제약사들이 현장에서 추가 미팅을 잡기 시작했다"며 기술이전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③선택지 없는 췌장암에 도전…온코닉테라퓨틱스의 '네수파립' 1b상
췌장암은 항암제 임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벽이다. 전이가 생기면 생존 기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현재 표준 치료인 젬아브락산 요법의 글로벌 임상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은 고작 8.5개월이다.
전이성·진행성 췌장암 27명 대상 임상 1b상에서 젬아브락산 병용군 ORR 53.8%, DCR 92.3%, mOS 14.2개월이 나왔다. 기존 표준 치료(8.5개월)의 약 1.7배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전이된 췌장암에서 완전관해(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달성한 환자로, 현재 40개월 이상 생존 중이다.
데이터 분석 시점에도 4명이 암이 진행되지 않은 채 투약을 지속하고 있어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미도달' 상태다. 수치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다.
김존 온코닉테라퓨틱스 대표는 "KRAS 변이 환자와 BRCA 변이가 없는 환자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 만큼 글로벌 협력 논의를 확대해 네수파립의 임상적·사업적 가치를 높여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