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근손실 최소화'가 새로운 경쟁 포인트로 떠오르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차세대 비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위고비·마운자로 등 기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약은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지방과 함께 근육도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에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체중은 줄이면서 근육량을 유지하는 비만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근손실 문제는 최근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물론 국내 기업들까지 근육량을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는 차세대 비만 신약 개발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근육은 기초대사량을 높여 체중 조절과 혈당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심혈관계 질환에도 관여한다. 근육량이 급격히 감소하면 디스크나 관절염은 물론 각종 대사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외부 활동량 감소로 이어지면서 치매 등 노년성 질환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비만약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마운자로)도 역시 근육 보존 효과를 높인 차세대 비만약을 개발 중이다.
노보는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와 아밀린 유사체 카그릴린타이드를 결합한 복합제 '카그리세마'를 개발 중이다. 기존 GLP-1 계열 치료제보다 체중 감량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근육 손실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릴리는 GLP-1, 위억제펩타이드(GIP), 글루카곤(GCG)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는 삼중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체중 감소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제지방량 감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개발 방향이다.
릴리는 지난해 11월 에이비엘바이오(298380)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한 이후 근육 관련 질환 분야로도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B(Grabody-B)'의 치료 대상 질환을 비만 치료제 부작용으로 인한 근감소증 등 근육 관련 질환으로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는 그랩바디-B의 핵심 표적인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1 수용체(IGF1R)가 근육 조직에서도 높게 발현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근육 보존 효과를 앞세운 차세대 비만 신약 개발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근육 증가형 비만약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한미약품(128940)이다. 회사는 다음 달 5~8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미국당뇨병학회(ADA 2026)에서 비만 신약 후보물질 2종에 대한 연구 결과 8건을 발표할 예정이다.
먼저 UCN2 기반 비만 신약 후보물질 'HM17321'은 지방을 선택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근육량 증가를 유도하도록 설계됐다. UCN2는 심혈관계 보호 효과뿐 아니라 골격근에 직접 작용해 근육 비대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이번 학회에서 처음 공개되는 'HM500197'은 근육 성장 조절 단백질인 마이오스타틴을 억제하는 기전의 펩타이드 후보물질이다. 마이오스타틴은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단백질로, 이를 차단하면 근육량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한미약품은 '한국형 비만 신약'으로 불리는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셀트리온(068270)도 지난 29일 GLP-1을 포함한 4개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는 4중 작용제 비만 신약 'CT-G32' 개발 현황을 공개했다.
회사는 영장류 대상 독성시험에 본격 착수했으며 기존 GLP-1 치료제의 한계로 꼽히는 환자별 체중 감량 편차와 근손실, 약효 지속성 문제를 개선하는 동시에 체중 감량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순 체중 감량 치료제를 넘어 지방·근육·에너지 대사를 종합적으로 조절하는 대사질환 치료 플랫폼으로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셀트리온은 비임상 연구에서 선행 개발 중인 대조 약물 대비 동일 용량 기준 더 우수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으며, 근육을 포함한 제지방량(LBM)을 보존하는 결과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내년 상반기 임상시험계획(IND) 제출 이후 글로벌 임상 개발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일동제약(249420)도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근손실을 줄인 차세대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회사가 개발 중인 'ID110521156'은 미국 화이자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인 단유글리프론 계열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한 저분자 GLP-1 수용체 작용제다.
현재 국내 임상 1상을 마치고 글로벌 임상 2상을 준비 중이다. 회사는 화학 구조를 최적화해 기존 약물의 한계를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체성분 분석 결과 체지방은 감소한 반면 제지방량은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기존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단점으로 꼽혀온 근손실 문제를 개선할 가능성을 나타냈다.
유한양행(000100)의 관계사인 프로젠도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GLP-1과 GLP-2 수용체에 동시에 결합하는 이중작용제 'PG-102'를 개발 중이다. GLP-1의 체중 감량 효과에 더해 장 점막 회복과 영양 흡수에 관여하는 GLP-2의 특성을 활용해 근육 손실을 최소화한 건강한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 축이 단순 체중 감량에서 근육 보존과 대사 건강 개선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얼마나 많은 체중을 감량했는지보다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유지했는지가 차세대 비만약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