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바이오 산업을 견제·추격하기 위해 서로 다른 해법을 꺼내 들고 있다.
미국이 '생물보안법'과 투자 규제를 앞세워 중국 바이오 기업으로의 자본·기술 유입 차단에 집중한다면, 유럽연합(EU)은 임상·연구개발(R&D) 생태계 지원을 강화해 신약 경쟁력 자체를 끌어올리는 전략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역시 생산 중심 경쟁을 넘어 임상 데이터와 R&D 속도를 끌어올릴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은 최근 중국 바이오 산업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각기 다른 정책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존 물레나르(John Moolenaar) 미국 하원 중국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포괄적 해외투자 국가안보법(COINS법)'에 바이오 기술 분야를 투자 제한 대상으로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EU 집행위원회는 두 번째 EU 바이오기술법(EU Biotech Act) 제정을 추진하며 기초연구부터 임상·상업화까지 이어지는 바이오 생태계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美, 자본 차단·공급망 통제 중심 '中 견제'
미국의 전략은 중국 바이오 산업으로 향하는 자본과 기술 흐름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레나르 의원은 서한에서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바이오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는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혁신적인 의약품 개발이 핵심 경쟁 축"이라고 밝혔다.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이번 움직임이 미국 제약사와 중국 바이오 기업 간 대형 기술거래 급증에 대한 경계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글로벌 기술거래 규모는 지난해 약 1360억달러(한화 206조원)에 달했으며, 5000만달러(약 760억원) 이상 대형 계약 비중도 2020년 0%에서 지난해 48%까지 급증했다.
최근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은 중국 헝루이제약과 총 150억달러(약 23조원) 규모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양측 간 기술 협력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바이오 산업을 반도체·인공지능(AI)과 같은 전략 산업으로 보고 있으며,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통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유전체 분석 등 핵심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EU, 'R&D·임상 중심'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
반면 유럽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산업 경쟁력 자체를 키우는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두 번째 EU 바이오기술법 제정은 연구·임상·상업화 전 주기를 아우르는 지원 체계를 강화해 바이오 산업의 속도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를 통해 신약 개발 비효율을 줄이고 투자와 기술이 유럽 내에서 선순환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발표된 1차 EU 바이오기술법에는 규제 샌드박스, 산업용 미생물 신속 인허가, 바이오 제조 프로젝트 허가 간소화 등 지원책이 포함됐다.
2차 법안은 기존 전략을 보완하면서 EU 내 바이오 기업들의 사업성 확보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의료·제약(레드바이오) 중심에서 산업바이오(화이트바이오), 바이오소재(그린바이오), 바이오제조 분야까지 범위를 확장해 산업 전반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 특징이다.
EU는 임상 승인 속도 개선, 자본 접근성 확대, 규제 유연화 등을 통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의 임상과 투자를 유럽으로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다국가 임상시험 승인 기간 단축과 규제 샌드박스 도입은 기업들의 임상 수행과 투자 거점을 유럽으로 재편하는 핵심 유인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韓, 허가 중심 정책 한계…임상·R&D 속도전 시급"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최근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신약 기술수출 규모가 역대 최대인 20조원을 넘어섰지만, 중국(약 100조원)과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
한국 정부도 규제 개선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다음달 1일부터 신약·바이오시밀러·신기술의료기기 허가·심사 절차를 단축하는 '의료제품 허가·심사 혁신방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허가 신청 이전 단계 대면회의 도입, 체크리스트 제공, 195명 인력 확충 등을 통해 허가·심사 기간을 약 240일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심사 방식도 기존 직렬 중심에서 동시·병렬 심사 체계로 전환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여전히 정책이 허가 단계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경쟁의 핵심이 허가보다 앞단인 임상시험 승인 속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바이오 경쟁은 결국 누가 더 빠르게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라며 "신약 허가 심사 단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단인 임상시험 승인 속도를 높여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임상에 신속히 진입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