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릭스 일라이 릴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당뇨·비만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젭바운드(Zepbound)'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글로벌 빅파마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가 이번엔 백신 기업 3곳을 한꺼번에 사들였다.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키순라(Kisunla)'에 이어 대상포진·EB 바이러스(EBV) 백신까지 확보하며 치매·뇌졸중 등 신경계 질환 예방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라이 릴리는 26일(현지 시각) GC녹십자(006280)의 미국 관계사 큐레보(Curevo, Inc.), 스위스 백신 기업 리마테크바이오로직스(LimmaTech Biologics AG), 미국 바이오기업 백신컴퍼니(Vaccine Company, Inc.) 등 3개 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규모는 조건부 마일스톤을 포함해 최대 38억3000만달러(약 5조7600억원) 규모다. 각 회사의 계약 총규모는 최대 15억달러(약 2조2000억원), 리마테크 최대 7억8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 백신컴퍼니 최대 15억5000만달러(약 2조3000억원)이다.

릴리는 이번 거래 목적에 대해 "질병의 결과를 치료하기보다 질병 발생 자체를 원천 예방(prevent disease at its source)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실제 릴리는 이번 발표에서 감염병과 장기 신경질환 간 연관성을 언급했다. 뇌졸중, 치매와 대상포진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결과, 헤르페스 계열 바이러스인 EBV(Epstein-Barr Virus)와 다발성경화증(MS), 혈액암, 위암 등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위)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몸에 들어와 잠복했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긴 틈을 타 다시 활동하면서 발생한다. /사진 옥스퍼드대(아래) 영국 GSK의 유전자 재조합 사백신 싱그릭스. /사진 GSK

◇ 대상포진 백신 맞았더니 치매 위험 20% 감소

다니엘 M. 스코브론스키(Daniel M. Skovronsky) 릴리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수십년간 축적된 연구 결과는 흔한 감염병이 수년 뒤 신경질환·암·불임 같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항생제 내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백신은 점점 유일한 예방 수단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국제 학계에서는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거듭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진은 올해 국제학술지 '랜싯 뉴롤로지(Lancet Neurology)'에 캐나다 온타리오주 주민 46만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의 치매 진단 위험이 미접종자 대비 약 20% 낮았다고 발표했다.

앞서 영국 웨일스 주민 28만명을 7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셀(Cell)'에 게재됐다. 또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서 GSK의 유전자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Shingrix)'가 기존 생백신 대비 치매 예방 효과가 더 우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릴리의 인수로 시장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회사는 큐레보다. 큐레보는 GC녹십자가 2018년 미국 시애틀에 설립한 대상포진 백신 개발 기업이다. GC녹십자는 보유 중인 큐레보 지분 2107만5336주 전량을 릴리에 약 4599억원(3억392만달러)에 매각하기로 했다. 양도 예정일은 오는 8월 24일이다.

큐레보의 핵심 파이프라인은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 '아메조스바테인(amezosvatein)'이다. GC녹십자와 릴리에 따르면 이 후보물질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백신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싱그릭스와 비교한 임상 2상에서 주요 면역반응 지표를 충족하면서도 피로감·오한·주사 부위 통증 등 부작용 발생은 절반 이상 줄였다. 현재 싱그릭스는 높은 예방 효과에도 접종 후 통증·발열 등 부작용과 비용 부담으로 2차 접종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릴리는 향후 개발 백신을 상용화해 접종률을 높이고, 치매와 뇌졸중 위험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GC녹십자는 이번 거래로 향후 백신 판매에 따른 로열티(샤용료)와 생산 수주 가능성을 확보했다.

◇ GSK·아리바이오도 '백신 기반 치매 예방' 주목

글로벌 빅파마들이 비만·당뇨 이후 차세대 성장 축으로 '신경과학' 분야와 '예방의학'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키순라(Kisunla)'까지 상용화하며 중추신경계(CNS) 영역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앞서 GSK도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를 앞세워 치매 예방 효과 연구를 확대해 왔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와 전략이 잇따르고 있다.

연동건 경희대 의과대학 디지털헬스학교실 교수는 질병관리청·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국내 50세 이상 성인 약 220만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의 스카이조스터(SKY Zoster) 등 대상포진 생백신 접종자의 심근경색·뇌졸중·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약 23% 낮았다고 밝혔다.

연동건 교수는 조선비즈와 만나 "대상포진 백신이 단순히 대상포진만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 염증 부담을 낮춰 심혈관계 질환 위험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신경절에 잠복했다가 재활성화되며 전신 염증을 유발한다"며 "백신이 이런 염증 부담을 줄여 치매를 포함한 다양한 질환 위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 신약 후보 'AR1001'을 개발 중인 아리바이오는 최근 차백신연구소(261780)를 인수하며 백신 기반 치매 예방 전략을 짜고 있다. 차백신연구소는 아리바이오랩(Lab)으로 사명이 바뀔 예정이다.

정재준 아리바이오랩 대표·아리바이오 공동대표는 조선비즈와 만나 "미래의 알츠하이머 치료는 '염증'과 '면역'이 화두가 될 것"이라며 "차백신연구소가 보유한 독자적인 면역증강 플랫폼 'L-pampo'를 활용한 접근이 치매 치료제 개발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릴리가 큐레보와 함께 인수한 백신컴퍼니는 EBV 백신 플랫폼 기술을 개발 중이다. EBV는 전염성 단핵구증의 원인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다발성경화증(MS), 혈액암, 위암 등과의 연관성이 주목받고 있다. 또 다른 인수 대상인 리마테크는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임질균(Neisseria gonorrhoeae), 클라미디아(Chlamydia trachomatis) 등 항생제 내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세균 감염 백신을 개발 중이다.

참고 자료

Lancet Neurology(2026), DOI: https://doi.org/10.1016/S1474-4422(25)00455-7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2026), DOI: https://doi.org/10.1093/gerona/glag008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11.007

European Heart Journal(2025), DOI: https://doi.org/10.1093/eurheartj/ehaf230

Clinical Microbiology and Infection(2025), DOI: https://doi.org/10.1016/j.cmi.2025.05.003

KJIM(2025), DOI: https://doi.org/10.3904/kjim.2025.171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3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