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증권 시장에서 소외를 겪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이 하반기 반등할지 주목된다. 글로벌 학회 임상 발표 확대와 기술수출(L/O) 회복 기대, 정책 자금 유입 가능성이 맞물리고 있어서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기술수출 성과와 재무 안정성을 갖춘 기업 중심으로 자금이 쏠리는 '옥석 가리기' 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K-바이오주, 상반기 힘 못 쓴 이유는
22일 한국거래소를 통해 올해 지수 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코스닥 지수가 약 16% 상승했지만, 코스닥 제약 지수는 약 11% 하락하며 시장 대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첫 거래일인 1월 2일 코스닥 제약 지수(종가 기준)는 1만 3288.62로 출발해 상승 곡선을 그리며 3월 27일 1만 7420.86선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전날(5월 20일) 1만 1819.31로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기술수출 규모가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음에도 바이오 업종 지수는 당시 수준을 밑돌고 있어 과도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평가도 있다.
키움증권은 "K-바이오의 기술 이전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해 2021년 코로나 수준을 뛰어넘었음에도 최근 코스닥 제약 지수는 2021년 당시 1만 3300선을 밑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같은 다른 업종(섹터)으로 투자 수요가 쏠린 점도 있으나,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계약 조건과 임상 데이터에 관한 잡음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신뢰가 흔들리면서 바이오 섹터를 회피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삼천당제약(000250) 신뢰성 논란, 알테오젠(196170), 에이비엘바이오(298380) 등의 계약 세부 조건, 임상시험 주요 데이터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면서 주가가 요동쳤다.
◇"반전 노린다" K-바이오 반등 신호는
증권가에서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이 하반기로 갈수록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작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 이전은 약 14건, 총규모 137억 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국내 바이오 업계가 체결한 기술수출 규모는 약 65억달러로 작년 전체의 절반 수준에 도달했다. 상반기 시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평가다.
알테오젠(196170)은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미국 바이오젠(Biogen)에 각각 ALT-B4 플랫폼 기술을 이전해 경쟁력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서구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이 자사 신약과 병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중국 대형 제약사들이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바이오 회사들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하반기 국제 학회와 전시 행사도 기대를 모은다. 오는 27일 유럽간학회(EASL)가, 오는 29일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가 열린다. 이어 6월 미국바이오협회 주관 행사인 바이오 인터네셔널 컨벤션(바이오USA)'가 개최되고, 10월 유럽종양학회(ESMO) 연례학술대회가 열린다.
주요 학회에서 발표되는 연구 성과가 중장기 기술 수출과 품목 허가 등의 성과로 이어져 왔다. 바이오USA는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 연구 기관이 모여 공동 연구, 기술 거래, 투자 유치 등 사업 파트너십을 논의하는 장이다.
유럽간학회에서 디앤디파마텍(347850)은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개발 중인 DD01의 임상 2상 결과를 최초 공개한다.
ASCO에서 지아이이노베이션(358570), 바이젠셀(308080), 루닛(328130) 등이 구두 발표를 한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GI-101A'는 기술 수출을 목표로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으로, 긍정적인 임상 데이터 확보 시 추가 기술 수출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젠셀은 세포치료제 'VT-EBV-N'의 임상 2상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회사 측은 "구두 발표 세션은 전체 제출되는 수천건의 초록 중 소수만 선정된다"며 "세포치료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이 ASCO 정식 구두 발표 세션에 채택된 첫 사례"라고 말했다.
◇정책·유동성 관건…옥석 가리기 시작
금리와 정책 환경 변화도 바이오 업종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다. 바이오 업종은 미래 성장 가치를 기반으로 평가 받는 성장주인 만큼 금리 하락 시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정책 자금 유입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바이오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제도와 국민성장펀드가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경우 비상장·코스닥 바이오텍 중심으로 유동성 공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단순 생산 위탁을 넘어 연구개발까지 포함하는 위탁 연구·개발·생산(CRDMO) 육성 정책도 추진 중이다.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 계열사인 비티젠(BTGEN),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에스티팜(237690) 등 글로벌 생산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
다만 과거처럼 업종 전체가 동반 급등하는 흐름보다는 실적, 기술력, 임상 데이터 등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업 중심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차별화 장세'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잇따른다.
2021년 하반기부터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제도 평가 항목이 기존 26개에서 35개로 늘어나며 상장 문턱이 높아졌다. 그 여파로 2022년부터 바이오 상장 기업 수가 급격히 줄었으며 기술성·사업성을 입증한 기업만 상장에 성공했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전날 보고서에서 "국내 바이오 업종이 미국 금리와 미국 제약·바이오 시장 흐름에 높은 연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경우 밸류에이션 회복이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업종이 주가 회복을 위해서는 기술 이전이라는 형태의 성장성 입증이 필수적이고, 4분기에 기술 이전이 집중되는 계절성을 고려할 때 하반기 이벤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