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올해 1분기 실적이 기업 규모와 사업 구조에 따라 뚜렷한 양극화 흐름을 보였다. 대형 제약사와 일부 바이오 기업은 기술수출과 해외 사업 확대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간 반면, 중소 제약사와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수익성 둔화와 적자 부담이 이어졌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 2000억원 이상 대형 제약사 13곳 가운데 11곳(85%)은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영업이익이 감소한 곳은 2곳에 그쳤고, 영업손실을 기록한 기업은 없었다. 반면 매출 1000억원 미만 중소 제약사 26곳 가운데 절반가량은 영업이익 감소 또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수익성이 악화됐다.

◇K바이오 2대장, 실적 성장 견인…전통 제약사도 해외 매출 덕에 '쑥'

올해 1분기 실적은 이른바 'K바이오 2대장'이 이끌었다. 두 회사 모두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쓰며 국내 바이오 업계 성장세를 견인했다. 해외 수주와 판매 확대, 우호적인 환율 효과 등이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매출 1조2571억원, 영업이익 580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8%, 35% 증가했다. 1~4공장 가동률 상승과 꾸준한 해외 수주 확대가 실적 성장의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미국 록빌 생산시설 인수 절차도 마무리하며 글로벌 수주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셀트리온(068270)도 매출 1조1450억원, 영업이익 3219억원으로 각각 36%, 115.4% 늘며 성장 폭을 키웠다. 미국·유럽에서 판매 중인 11개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이어간 데다, 고수익 신규 제품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SK바이오팜(326030) 역시 미국에서 판매 중인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 성장세에 힘입어 호실적을 냈다. 매출은 2279억원, 영업이익은 8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8%, 250% 증가했다.

그래픽=정서희

전통 제약사들도 내수 시장 약가 인하 압박 속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유한양행(000100)은 매출 5096억원, 영업이익 88억원으로 각각 8.6%, 2.1% 증가했다. 폐암 신약 '렉라자' 기술료 유입과 해외 사업 확대가 실적 개선을 뒷받침했다.

종근당(185750)은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 공동 판매 효과에 힘입어 매출 4477억원, 영업이익 176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12.2%, 36.9% 성장했다.

GC녹십자(006280)는 매출이 3838억원에서 4355억원으로 13% 증가하며 주요 전통 제약사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 출시한 혈액제제 '알리글로' 매출이 전년 대비 약 4배 증가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반면 일부 기업은 매출 성장에도 수익성이 악화됐다. 한미약품(128940)은 매출이 3929억원으로 0.5% 증가했지만 글로벌 파트너사 대상 임상 시료 공급 종료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536억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9.1% 감소했다.

대웅제약(069620)도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와 일반의약품, 디지털헬스케어 사업 성장으로 매출이 3778억원까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22억원으로 40% 넘게 줄었다.

◇코스닥 바이오, 기술수출 성과와 R&D 부담 '온도차'

코스닥 바이오기업 가운데서는 알테오젠(196170)이 가장 눈에 띄는 실적을 냈다. 알테오젠은 1분기 매출 716억원, 영업이익 393억원을 기록했다. 피하주사(SC) 전환 플랫폼 'ALT-B4(하이브로자임)' 기반 기술수출 계약이 실적을 견인했다.

반면 대규모 임상 개발에 돌입한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이 본격화되며 적자 흐름을 이어갔다.

리가켐바이오(141080)는 영업손실 422억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회사의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은 1065억원으로 적자 폭이 확대됐지만, 2000억원대 R&D 투자를 집행하며 신규 파이프라인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12건, 약 9조6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으며, 내년까지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 후보물질만 15개가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HLB(028300)는 매출 187억원으로 전년 대비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232억원을 기록했다.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이 아직 상업화 전 단계인 데다, 담관암 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의 후기 단계 임상,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CAR-T·카티) 개발 등 R&D에 집중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 역시 기술이전 수익이 반영돼 매출이 131억원까지 늘었지만, 뇌질환·항암 파이프라인 7개 임상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17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사업 기반과 수익 구조에 따라 기업 간 실적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판매망과 대형 생산시설을 확보한 기업들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간 반면, 연구개발 중심 바이오기업들은 임상 비용 부담이 커지며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연매출 1조원을 넘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9곳까지 늘어났지만 실제 성장은 일부 상위 기업에 집중되고 있어 향후 기술수출이나 후기 임상 성과 여부에 따라 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양극화가 심화하지 않도록 임상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 투자 활성화 같은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