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보다 미·중 갈등이 더 큰 변수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마티 마카리 미 식품의약국(FDA) 국장 사임 이후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과 초기 임상 협력과 기술거래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중국 견제가 거세질수록 국내 업계 영향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 바이오 업계의 중국 접점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중국 제약사들이 항체약물접합체(ADC) 파이프라인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는 전언이다. 지난 3월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바이오 차이나 2026′에는 처음으로 한국관이 마련돼 국내 기업 21개사가 참여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더 이상 저비용 생산기지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신약 개발의 핵심 축으로 올라서고 있다고 본다. 상하이 장장(張江)에는 이미 화이자,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 연구 거점이 밀집해 있다.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 방문을 마친 뒤 이동하며 대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 연합뉴스

◇中 추격에 속도전 나선 미국…FDA 개혁 '가속' 전망

업계에서는 최근 FDA 개혁 흐름 역시 중국 추격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고 본다. 중국이 임상 비용과 개발 기간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하자 미국도 신약 개발과 허가 절차를 단축하는 방향으로 규제 체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FDA는 임상 데이터를 개발 단계부터 실시간으로 공유받아 검토하는 '실시간 임상' 체계를 추진 중이다. AI·오가노이드 등을 활용해 초기 임상 진입 속도를 높이고, 바이오시밀러 규제도 단순화하는 방안이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차기 FDA 수장으로 자신의 기조에 맞는 인물을 앉히면서 개혁 속도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위기감은 수치로 드러난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최초혁신신약(FIC) 파이프라인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8%에서 2025년 12%로 확대됐고, 내년에는 15~18%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임상 속도에서도 중국은 미국보다 1상 기준 평균 7개월 빠르고, 비용은 30~50% 낮다. 미국제약협회(PhRMA)는 올 초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내고 중국이 미국 기술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글로벌 바이오 혁신 경쟁의 주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발 기술수출 확대도 미국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는 지난 12일 중국 헝루이파마슈티컬스와 최대 152억달러 규모의 공동 개발·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기업들도 중국 기술을 들여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JW중외제약(001060)은 지난달 중국 간앤리 파마슈티컬스와 GLP-1 수용체 작용제 후보물질 '보팡글루타이드'의 국내 독점 라이선스-인 계약을 맺었다. HK이노엔(195940)도 중국 사이윈드로부터 GLP-1 유사체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개발·상업화 권리를 도입했다.

미국은 결국 바이오 공급망과 기술 패권을 국가안보 문제로 재정의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지난 2월 중국의 바이오기업 지원과 가격 정책이 미국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유전체 시퀀싱, 합성생물학, 활성의약품성분(API) 제조 등이 조사 대상이다. 오는 27~28일 공개 청문회를 거쳐 내년 1월 결과가 나오며, 반덤핑관세 등 통상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은 여기에 아랑곳없이 AI 기반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와 국유 펀드가 바이오·AI 융합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베이징 기반 DP테크놀로지는 지난해 말 1억1400만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미국이 견제망을 치는 동안 중국은 다음 세대 기술에 베팅하고 있는 셈이다.

◇틈바구니 선 한국 바이오…"2상 지원 절실"

이 틈에서 한국 바이오의 구조적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바이오 기업 상당수가 임상 2상 단계에서 기술수출에 나서는 만큼 이 구간에 대한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은 아직 9~15위권 수준"이라며 "기업이 임상 2a·2b상을 넘어설 수 있도록 투자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관련 펀드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부터 K-바이오·백신 펀드를 통해 초기 단계 바이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체감 온도는 낮다. 지난해 9월 기준 해당 펀드 1~4호에서 총 4666억원이 결성됐지만, 이 가운데 집행된 금액은 1208억원에 그쳤다. 금융위원회의 '국민성장펀드 2차 메가프로젝트'도 3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현장 수요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2상 단계 프로젝트가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며 유망성에 따라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는 2상 전용 지원 체계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방식으로 속도를 높이는 동안, 한국 바이오가 중간 어딘가에 머물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