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핵산(RNA) 기반 유전자치료제 개발 전문기업 알지노믹스가 19일(현지 시각)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 연례학술대회(AACR 2026)에서 RNA 기반 항암제 'RZ-001'의 간세포암(HCC) 대상 임상시험 중간 결과 발표했다. 사진은 해당 연구를 수행한 김윤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구두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알지노믹스

세계 3대 암학회 중 하나인 미국 미국암연구학회 'AACR 2026′에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잇달아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AACR은 전 세계 140여개국의 암 관련 연구자와 제약·바이오 기업 관계자 2만2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암 연구학회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세계 3대 암 학회로 꼽힌다.

올해는 지난 17일(현지 시각)부터 오는 22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 '전 세계 생명을 살리기 위한 암 과학의 진전(Advancing Cancer Science to Save Lives Globally)'을 주제로 열렸다.

한국 기업들은 기존 치료 한계를 넘기 위한 '정밀 표적화'와 '다중 기전' 전략을 잇달아 제시했다. AACR은 매년 3대 암학회 중 가장 먼저 열리고, 전임상·초기 임상 중심 발표가 많아 기술 수출 가능성과 향후 5~10년 항암 치료의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자리로 평가된다.

◇ 보로노이·알지노믹스 임상 성과…HLB, 정밀 표적 경쟁력

특히 실제 환자 대상 임상 연구 데이터를 새롭게 발표한 기업들이 주목된다. 국내 기업 중에선 리보핵산(RNA) 기반 치료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알지노믹스(476830)와 차세대 폐암 표적치료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보로노이(310210)가 대표적이다.

보로노이가 발표한 폐암 치료 후보물질 VRN11에 대한 임상 1상 결과에 따르면, VRN11은 기존 3세대 EGFR 저해제인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치료 이후 내성이 생긴 폐암 환자군에서 유효 용량 투약 시 객관적 반응률(ORR) 100%를 기록했다. 이는 치료 후 종양 크기가 일정 기준 이상 감소한 환자의 비율이 100%였다는 의미다. 질병통제율(DCR)은 96.8%로, 종양이 줄거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은 환자의 비율을 포함한 지표다.

고용량 투여에서도 약물과 관련된 중증 부작용 발생이 제한적으로 보고돼, 전반적인 내약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확인됐다. 다만 초기 임상 단계인 만큼 향후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항암 치료는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으로 발전해왔다. 화학항암제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라면, 표적항암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겨냥하고, 면역항암제는 인체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을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알지노믹스(476830)가 개발 중인 RNA 기반 항암제 후보 'RZ-001'는 간세포암 환자를 대상한 임상 중간 결과를 통해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번 발표는 임상 연구를 수행한 김윤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맡았다.

RZ-001은 RNA를 이용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발현 과정을 조절하는 항암제다. 기존 치료제가 단백질이나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라면, 유전자 단계에서 작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암의 근본 원인을 겨냥하는 새로운 치료 접근이다.

회사에 따르면 RZ-001을 면역항암제 아테졸리주맙, 베바시주맙과 병용 투여한 결과, 종양반응률(ORR)은 38.5%(확인된 반응, confirmed), 46.2%(초기 평가 기준, unconfirmed)로 나타났다. 이는 종양 크기가 일정 기준 이상 감소한 환자 비율을 의미한다. 이후 반복 검사에서 반응이 유지되면 'confirmed'로 확정된다.

종양 내 살아있는 암 조직의 변화를 반영하는 mRECIST 기준에서는 ORR 61.5%, 완전관해(CR) 23%를 기록했다. 완전관해는 영상 검사에서 암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며, 재발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완치와는 구별된다. 회사는 이런 결과에 대해 "종양 크기 감소뿐 아니라 종양 내부 괴사까지 동반된 '깊은 반응'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HLB(028300) 자회사 엘레바 테라퓨틱스는 FGFR2 표적 항암제 '리라푸그라티닙'의 선택성을 입증한 데이터를 발표했다. 해당 약물은 담관암 적응증으로 미국 식품의약국 FDA 허가 심사가 진행 중이다.

발표에 따르면 리라푸그라티닙은 세포 내 신호 전달을 조절하는 단백질인 '키나아제(kinase)' 전반의 활성 변화를 분석하는 키놈 분석을 통해 FGFR2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보였다. 이는 다른 FGFR 계열 수용체에 대한 억제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미로, 기존 범FGFR 저해제 대비 비표적 작용에 따른 부작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특성으로 해석된다.

◇ 난치암 겨냥 신기술 속속…플랫폼 경쟁에 '조기 록인'까지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인 난치암을 겨냥한 국산 신약 후보물질의 전임상 데이터도 잇따라 공개됐다. 정밀 표적과 새로운 원리의 접근이라 주목된다.

온코닉테라퓨틱스(476060)는 이중 표적 항암 후보물질 '네수파립'의 비임상 데이터를 처음 공개했다. 암세포 증식을 유도하는 c-Myc와 YAP을 동시에 억제하는 기전으로, 전임상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최대 133배 높은 성장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

큐로셀(372320)은 서울대병원, 스탠퍼드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CAR-T 치료제의 한계로 꼽혀온 '동족 살해' 문제를 해결한 전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CD5와 TRAC을 동시에 제거해 세포 간 상호 공격을 차단했으며, 기성품형 CAR-T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오름테라퓨틱(475830)펩트론(087010)은 각각 단백질 분해 기반 차세대 항암 플랫폼을 제시했다. 오름테라퓨틱은 DAC(항체-분해약물접합체)를 통해 표적 단백질을 제거하는 접근을, 펩트론은 IEP 플랫폼으로 세포 내 단백질 제거 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각각 소개했다. 두 기술 모두 기존 항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미국암연구학회(AACR)에 참가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 부스 앞. /삼성바이오로직스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도 AACR에 처음 참가했다. 회사는 홍보 부스를 열고, 위탁연구(CRO)·개발(CDO)·생산(CMO)을 아우르는 CRDMO 사업 역량을 강조했다. 이 회사는 기존 생산 중심 사업에서 연구·개발 영역까지 확대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환자 유래 특성을 반영한 '삼성 오가노이드'와 이중항체 플랫폼 '에스-듀얼(S-DUAL)®'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초기 단계부터 협업을 시작해 상업 생산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구축해, 고객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이른바 '조기 록인(lock-in)' 전략이다.

CDMO 기업 롯데바이오로직스도 ADC(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 '솔루플렉스 링크(SoluFlex Link)'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기술은 ADC의 응집을 억제해 시간 경과에도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포·동물실험에서는 기존 대비 낮은 농도에서도 항암 효과가 나타났고, 약동학(PK) 개선 가능성도 확인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항체에 제한되지 않는 범용 ADC 플랫폼으로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