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9일 LG화학은 미국 항암신약 기업 아베오 인수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마이클 베일리 아베오 최고경영자(CEO), 손지웅 LG화학 사장 등 회사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LG화학

LG화학(051910)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각각 '성공 확률 1%대' 항암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들 회사는 LG와 삼성 두 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낙점해 육성 중인 제약·바이오 사업을 추진하는 핵심 엔진이다.

1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미개척 표적을 겨냥한 혁신 항암제 개발에 나섰다. 회사는 지난 1일 미국 프론티어메디신즈(Frontier Medicines)와 임상 1상 진입을 앞둔 항암 신약 후보물질 'FMC-220'의 글로벌 독점 개발·상업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암세포를 잡는 유도 미사일'이라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후보물질 'SBE303'의 임상 1상을 지난달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 회사가 개발하는 첫 신약 후보다. 해당 임상 1상은 2030년 7월까지 전 세계 진행성 고형암 환자 149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LG화학은 합성의약품 중심 사업을,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중심 사업을 펼쳐 왔는데, 두 회사 모두 지갑을 열고 항암제 개발을 본격화한 것이다. 안정적 수익 사업을 넘어 고위험·고수익 구조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암 신약 개발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전임상부터 임상1~3상을 거쳐 최종 허가까지 성공 확률이 1~3% 수준, 임상 1상 기준으로도 5~10%에 그친다.

하지만 성공 시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종양학 분야, 즉 항암제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가장 크고, 단일 약물로 연간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될 수 있다.

2022년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방문해 연구소를 살펴보고 있다. 이 회장 옆에서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사장(당시 개발본부장·부사장)이 설명하고 있다./삼성전자

◇ 사업 재편 이어 항암 파이프라인 속도

LG와 삼성 모두 지난해 바이오 사업 구조를 바꾼 데 이어 올해 항암제 개발에 무게를 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 LG화학은 생명과학본부 내 필러를 포함한 에스테틱 사업을 VIG파트너스에 매각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인적 분할을 하고, 신설 지주 회사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두 회사의 항암 신약 개발 전략과 속도는 차이가 있다.

LG화학은 2022년 미국 항암제 개발 바이오기업 아베오(AVEO Oncology)를 약 8000억원에 인수하며 단숨에 글로벌 임상·허가·판매 역량을 확보했다. 단순 후보물질 확보가 아니라 '상업화 플랫폼'을 통째로 사들인 셈이다.

상용화 가능성에 좀 더 다가선 건 LG화학이다. 회사가 개발 중인 두경부암 치료제 파이클라투주맙(Ficlatuzumab)은 임상 3상 단계로, 전체 생존기간(OS)을 확인하는 단계에 있다.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Fotivda)는 이미 미국에서 상업화에 성공해 2차 치료제로 영역을 넓히기 위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회사는 여기에 더해 임상 1상 단계의 FMC-220을 이번에 도입해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한층 강화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외부 바이오텍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ADC 플랫폼 기반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인투셀(287840), 에임드바이오(0009K0), 프로티나(468530) 등 바이오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후보물질을 확보하고, 자체 생산·공정 역량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항암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은 초기 단계다. 'SBE303′은 이제 임상 1상에 진입했고, 이 외 다수의 ADC 후보물질을 공동 개발과 전임상 단계에서 확보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임상 1상 단계 '떡잎' LG는 미개척 표적, 삼성은 검증된 표적

글로벌 임상 1상 단계 항암 신약 후보물질의 특성을 보면, LG화학은 아직 치료제가 없는 '미개척 표적'을 겨냥하고 있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검증된 타깃에 기술력을 더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화학이 도입한 FMC-220은 종양 억제 단백질 p53의 특정 변이 Y220C에 작용해 기능을 복원하는 원리다. p53은 암 억제의 핵심 단백질이지만, 변이가 생기면 기능이 무력화된다. Y220C 변이는 전체 암 환자의 약 1~3%에서 나타나지만, 단백질 구조상 약물이 결합하기 어려워 '언드러거블(undruggable)' 표적으로 분류돼 왔다.

LG화학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유결합 기반 설계를 적용했다. 이는 약물이 표적 단백질에 결합한 뒤 쉽게 분리되지 않는 비가역적 결합을 형성해 약효를 장시간 유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비공유결합 약물 대비 표적 결합 지속성과 효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비선택적 결합에 따른 독성 가능성을 고려한 정밀한 안전성 검증이 요구되는 접근법이다.

반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SBE303은 이미 항암 타깃으로 검증된 '넥틴-4′를 겨냥한다. 항체에 세포독성 약물을 결합한 ADC 구조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이다.

넥틴-4는 암세포 표면에 많이 나타나는 단백질인데, 이미 이를 표적으로 한 ADC 항암제 파드셉이 상용화돼 있다. 파드셉은 시젠과 아스텔라스가 개발한 항암제로, 2023년 화이자가 시젠을 인수한 이후 글로벌 판권을 분배해 판매되고 있다. 삼성은 완전히 새로운 표적을 개척하기보다는 기존 타깃에서 더 나은 효능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베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고 효능 가진 신약)' 전략에 가깝다.

양사의 도전 과제도 만만치 않다. LG화학이 공략하는 p53 계열은 수십 년간 성공 사례가 제한적이었고, 삼성이 도전하는 ADC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경쟁 중인 분야다.

결국 신약 개발의 승부는 이어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체력인 자본력과 임상 데이터에 달려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한 국산 항암제는 유한양행(000100)의 렉라자가 유일한데 이 약도 후기 임상 전에 기술을 이전한 것"이라며 "삼성과 LG가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글로벌 신약 개발과 의학계 난제 해결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LG화학의 경우 석유화학 사업의 부진이 길어질 경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아직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업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