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돌발성 감각신경성 난청'은 발병 초기 치료를 놓치면 청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치료제가 없다. 스테로이드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은 보청기나 인공 와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바이오기업 뉴라클사이언스가 난청 치료제 개발에 도전장을 냈다. 이 회사는 신경세포 간 '연결(시냅스, Synapse)'을 되살리는 새로운 접근으로 난청은 물론 치매 등 퇴행성 신경계 질환까지 겨냥하고 있다. 시냅스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해 신호를 전달하는 '연락망'과 같은 구조다. 이 연결이 끊어지면 정보 전달이 차단되면서 청력이나 인지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성재영 뉴라클사이언스 대표(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시냅스 연결을 복원하는 혁신적인 원리를 임상 데이터로 증명해, 국내 기술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인 클래스(출시된 제품이 없는 최초 신약)'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게 주요 목표"라고 밝혔다.
2015년 뉴라클사이언스를 창업한 성재영 대표는 신경내분비학자이자 약물 표적 단백질 발굴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동물학 학사, 분자생물학 박사를 거쳐 독일 괴팅겐 의과대학 박사후연구원,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논문도 없던 '노블 타깃' 발굴…10여 년 연구 끝 임상 진입
성 대표의 연구는 2003년 인간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면서 본격화했다. 그는 "인간 유전자가 2만 개인데, 그중 약물 표적은 1000개 정도로 단 5%에 불과했다"며 "나머지 95%는 아무도 모르는 영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물정보학을 통해 약 50개의 후보를 추렸고, 그중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 표적이 FAM19A5였다. 이 단백질은 신경세포 사이 연결 부위인 시냅스의 형성을 억제하고 분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뉴라클사이언스의 핵심 파이프라인 'NS101'은 바로 이 단백질의 활성을 저해해 시냅스를 유지, 복원하는 방식이다.
표적 선정 기준은 명확했다. △신경계(중추신경계 및 감각신경계)에서만 발현될 것, △세포 밖으로 분비되는 것, △진화적으로 보존된 것 등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는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들이다.
약물 부작용을 줄이려면 표적 단백질이 다른 장기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약이 작용하려면 세포 밖에 있어야 쉽기 때문이다. 진화적으로 보존된 단백질일수록 생명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돌연변이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사람과 포유동물(원숭이, 마우스, 래트, 개, 고양이) 사이의 아미노산 서열이 100% 일치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동물실험에서 나타난 치료 효과(시냅스 복원)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과학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처럼 전례 없는 '노블 타깃'을 선택한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성 대표는 "당시 이 단백질에 관한 논문이 한 편도 없었다"며 "기능부터 작용 원리(기전), 실험 방법까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직접 규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는 기존 연구를 참고해 가설을 세우지만, 우리는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하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쳤다"고 회상했다.
이 때문에 그는 연구 결과 공개보다 특허 확보를 우선시했다고 한다. 성 대표는 "논문을 먼저 발표하면 특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외부 공개를 미뤘다"며 "2007년 단백질을 발견했지만, 본격적인 논문 발표는 훨씬 이후부터 이뤄졌으며 핵심 논문은 2025년에 게재됐다"고 말했다. 뉴라클사이언스는 FAM19A5와 관련해 등록 특허 232건, 출원 특허 110건을 확보했다.
◇ "시냅스 복원 효과 확인…임상 2상 순항"
NS101은 시냅스 소실에 관여하는 단백질 FAM19A5의 활성을 억제하는 항체 치료제다. FAM19A5는 시냅스 형성에 중요한 단백질인 LRRC4B와 결합해 신경세포 간 연결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NS101은 이 결합을 차단함으로써 시냅스가 사라지는 것을 막고, 손상된 연결의 회복을 유도한다.
성 대표는 신경세포를 '연락처를 가진 존재'에 비유했다. 그는 "신경세포 하나가 1000개 정도의 연락처(연결)를 갖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나이가 들거나 질환이 생기면 이 연결이 하나씩 끊어지고,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기능이 떨어지다가 결국 세포가 죽는다"며 "끊어진 연결을 다시 늘리면 세포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설은 전임상에서 확인됐다. 동물실험에서 NS101을 투여하자 손상된 시냅스가 다시 형성되며 신경 연결이 회복됐고, 인지 기능과 청력 지표도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사람 대상 임상 1상에서도 유사한 안전성과 약동학 특성이 확인됐다. 현재 돌발성 난청 환자 95명을 대상으로 임상 2a상이 진행 중이며, 주요 데이터는 오는 6월 이후 공개될 예정이다.
성 대표는 "시냅스는 모든 신경계 질환의 공통 기반 구조"라며 "난청뿐 아니라 치매, 안과 질환, 운동 기능 장애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대상 질환군(적응증)으로 '난청'을 택한 이유는 난청이 시냅스 복원이라는 혁신적 원리(기전)를 가장 객관적이고 빠르게 증명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정상 청력이 듣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소리와 인공 와우 이식 환자가 듣는 소리는 매우 다르다. 성 대표는 "인공 와우로 듣는 소리는 웅장한 음악 소리가 아닌 '칙칙칙' 하는 신호로 변환된 수준"이라며 "정보는 전달되지만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귀 안의 유모세포가 완전히 죽기 전에 먼저 신경 연결이 끊어지는데, 그 시점에서 연결만 다시 살려주면 기능 회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난청은 청력 검사를 통해 약물의 효능을 수치로 즉각 확인할 수 있어 환자 수가 많지 않아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인지 기능 개선을 확인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치매보다 기전 증명(PoC)에 유리하다"며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미개척 시장'이라는 점도 주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난청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나 이 회사와는 전략적 차이가 있다. 미국 제약기업 일라이 릴리나 리제네론 등은 유전자 치료 기반으로 특정 유전성 난청을 겨냥하고 있는 반면, 뉴라클사이언스는 돌발성 감각신경성 난청을 대상으로 먼저 개발 중이며, 향후 소음성 난청, 이독성 난청, 노인성 난청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할 계획이다.
성 대표는 "유전자 치료는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고, 시장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며 "반면 우리는 노화나 환경 요인 등으로 발생하는 일반 난청을 대상으로 해 시장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글로벌 진출 첫 단추 '기술 수출' 노려
업계에서는 이번 NS101의 임상 2상 결과가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성 대표도 "데이터 확보 이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 대표는 지금까지의 연구 개발 과정을 "연속된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신약 개발 과정은 단계마다 탈락이 결정되는 구조다. 독성시험에 실패하면 개발이 중단되고 임상시험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사실상 재도전이 거의 불가한 식이다.
성 대표는 "FAM19A5 표적 발굴과 NS101 연구, 비임상 독성시험과 환자 대상 임상 1상 등의 관문 통과 등 지금까지 행운이 다섯 번, 여섯 번 있었던 격"이라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음에도 여러 관문을 통해 확인한 과학적 근거들이 신약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 됐다"고 말했다.
뉴라클사이언스는 NS101을 돌발성 감각신경성 난청 분야에서 우선 상용화한 뒤, 신경이과(Neurotology) 질환과 치매 등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적응증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시냅스는 모든 신경계 질환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성 대표는 "전두측두엽 치매 임상은 이미 지난해 12월 첫 환자 등록을 마치고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했다.
자금 조달도 병행한다. 회사는 올해 약 300억원 규모 프리(Pre)-IPO(기업공개) 투자를 유치하고, 난청 임상 탑라인 데이터를 확인한 후 기술성 평가 신청을 시작으로 내년 코스닥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213억원 유상 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성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제약사처럼 외부 기술을 도입해 키우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국내 기술로 신경계 질환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