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128940)그룹 창업자 일가 모녀가 지지해 온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이사의 연임이 좌초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새 대표이사로 증권·투자업계 출신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부문 대표가 거론된다. 황 대표가 선임될 경우 한미약품 53년 역사상 '한미맨'이 아닌 외부 인사가 한미약품 수장을 맡는 첫 사례가 된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008930)는 12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핵심 사업 회사인 한미약품의 이사 선임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이사회를 통해 의결된 안건은 오는 31일 열리는 한미약품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된다.
현재 한미약품 이사회 구성원 10명 중 박재현 대표이사와 박명희 이사, 김태윤 감사위원장, 윤영각 감사위원, 윤도흠 사외이사의 임기가 이달 만료 예정이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김 감사위원장의 연임 안건과 함께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PE부문 대표, 김나영 한미약품 신제품개발본부장, 채이배 전 국회의원, 한태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총장 등을 이사 후보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주사 이사회가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박 대표를 빼고 대표 교체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박 대표는 2023년 3월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한미약품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새 대표 후보인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PE부문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종근당홀딩스(001630) 대표를 거쳐 2025년 벤처캐피털 HB인베스트먼트의 신설 사모펀드(PEF) 본부장(부사장)으로 영입됐다.
황 대표 선임이 확정되면 한미약품은 창사 이래 첫 외부 영입 인사 대표 체제가 된다. 그동안 한미약품 수장을 맡은 전현직 대표(이관순, 우종수, 권세창, 박재현)는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경영 철학을 공유하며 수십 년간 한미약품의 성장을 이끈 내부 승진 전문경영인이었다.
이번 인사 논의 배경에는 한미약품그룹의 대주주 간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업자 일가 모녀와 형제가 둘로 나뉘어 경영권 분쟁을 하던 당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등 모녀는 조직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맡아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박재현 대표를 지지해 왔다.
이후 신동국 회장은 모녀에 힘을 실어줘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 신 회장은 당시 모녀 측과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지분 매각 시 사전 협의와 우선매수권을 보장하고, 위반 시 600억원의 위약벌금을 물기로 한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한양정밀이 보유 지분을 담보로 380억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하면서 계약 위반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이어졌다. 모녀 측은 사실상 지분 처분과 다름없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신 회장 자택과 지분 일부를 가압류한 상태다.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지난해 말 발생한 사내 성추행 처리 문제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에 대해 박 대표가 중징계를 추진하자, 신 회장이 이를 막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 대표 측은 인사 문제 외에도 경영 전반에 대한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박 대표 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한미약품 사내 직원들 사이에선 대주주 간 갈등으로 인해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가 사실상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어, 주주총회 전후로 파열음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