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제네릭(복제약) 가격 40% 인하안은 일본 사례를 참고한 '타협안'일 뿐입니다. 미국처럼 경쟁입찰제를 도입해 가격을 오리지널의 20%대까지 떨어뜨려야 합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에서는 한국 약가 구조를 둘러싼 비판과 개혁 요구가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서영석·장종태·김윤 의원과 무상의료운동본부가 공동 주최하고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주관한 행사다. 전문가들은 "약제비 구조 개혁은 가입자인 국민의 생존 문제"라고 강조했다.
◇韓 1인당 약값 OECD 3위…"제네릭 써도 지출 안 줄어"
발제를 맡은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의약품 지출액은 969달러(약 150만원)로 OECD 평균(658달러)보다 47.3% 높다. 미국과 독일에 이어 OECD 3위 수준이다.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2024년 약품비는 26조8000억원으로 전체 진료비 약 100조원의 24.15%를 차지했다. 의료비의 5분의 1 이상이 약값으로 지출되는 구조다.
주요 요인으로는 고령화에 따른 약제비 증가가 꼽혔다. 나 교수는 "국내 노인 인구 비중은 약 20%지만 노인 약품비 지출은 전체의 51.7%에 달한다"며 "연간 외래 방문 횟수는 OECD 평균의 약 3배(18회)에 이르고, 요양시설 입소 노인의 상당수가 매일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는 다제처방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제네릭의 역설'이 문제를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제네릭 사용량 비중이 49%에 이르지만 지출 비중도 41.7%로 높다. 제네릭 사용 확대가 약제비 절감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은 제네릭 사용량이 90%에 달하지만 지출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나 교수는 "한국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의 53.55% 수준으로 OECD 평균(약 25%)의 두 배 이상"이라며 "국내에서 많이 처방되는 240개 성분 가운데 제네릭이 오리지널보다 낮은 가격인 경우는 13개(5.4%)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는 약가 제도 개편을 통해 약품비의 절반 수준인 약 13조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성분명 처방(INN) 의무화로 대체조제율을 80%까지 확대(7조9000억원 절감) ▲참조가격제 도입으로 가격 경쟁 유도(2조6000억원 절감) ▲건강보험공단 주도의 경쟁입찰제를 통해 제네릭 가격을 20%대까지 인하(약 3조원 절감)하는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나 교수는 "뉴질랜드는 국가 입찰제를 통해 약가가 최대 95%까지 낮아진 품목도 있다"고 덧붙였다.
◇"성분명 처방 확대해야 약가 경쟁 가능"
두 번째 발제자인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대표원장(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성분명 처방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원장은 "국내 제약 시장은 영업과 판촉 중심 경쟁 구조가 강하다"며 "성분명 처방이 확대되면 동일 성분 의약품 간 가격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우선 품절 의약품과 퇴장방지 의약품을 대상으로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국제일반명(INN) 기반 처방을 적용하면 동일 성분 의약품으로 대체가 가능해 공급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가 정책 거버넌스 개편 필요성도 제기했다. 신약과 제네릭 의약품의 급여 등재 및 약가 결정 권한을 국민건강보험공단 중심 구조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 원장은 특히 콜린알포세레이트(뇌 영양제) 처방 규모를 예로 들며 약품 재평가 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콜린알포세레이트는 해외에서 건강기능식품 수준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연간 약 8000억원 규모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건강보험공단 산하 공공제약사 설립 필요성도 언급했다. 채산성 문제로 민간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필수 의약품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공 생산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제약업계 "통계 해석 차이…약가 인하 효과 제한적"
제약업계는 국내 제네릭 약가가 높다는 주장에 대해 통계 해석 방식의 차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약가 비교는 공장도가, 병원 공급가, 약국 판매가 등 적용 가격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동일 품목의 비교 결과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 약가 비교 연구에서 사용하는 가격 지수(라스파이레스·파셰·피셔 지수) 역시 각국 의약품 사용 구조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필수 의약품 가격은 주요국보다 낮다는 점도 강조했다. 협회에 따르면 항생제 가격지수(2022년 기준)는 한국을 1로 할 때 미국 3.34, 캐나다 1.73, 독일 1.81, 영국 1.55로 나타났다.
생리식염수 100ml 제품의 국내 가격은 약 1220원으로 영국(9865원)과 캐나다(5559원)보다 낮고, 500ml 제품 역시 약 1293원으로 호주(7509원)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협회는 설명했다.
협회는 제네릭 가격 인하가 반드시 건강보험 재정 절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정책 이후 환자 부담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협회는 "당시 1만3814개 품목 중 6506개(47.1%)의 가격이 평균 약 14% 인하됐지만 환자 부담은 13.8% 증가했고 의약품 사용량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늘었다는 연구가 있다"며 "약가 정책은 가격 규제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