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노보 노디스크가 차세대 비만 치료제 '카그리세마'의 임상 3상에서 경쟁사 일라이 릴리의 티르제파타이드('마운자로', '젭바운드' 주성분) 대비 비열등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주가는 장중 16% 넘게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비만 치료제 패권 경쟁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23% vs 25.5%…릴리 '티르제파타이드' 벽 못 넘어
노보는 이날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REDEFINE 4'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했다. 카그리세마는 체중 감량 효과에서 티르제파타이드 대비 비열등성(non-inferiority)을 충족하지 못했다. 비열등성은 경쟁 약물과 동등 이상의 효과를 보여야 달성되는 1차 평가지표다.
오픈라벨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임상에는 비만 및 하나 이상의 동반 질환을 가진 환자 809명이 참여했다. 평균 기저 체중은 114.2kg이다. 피험자들은 두 약물을 각각 주 1회 피하주사로 투여받았다.
84주간 치료를 완료한 환자 기준 체중 감량률은 카그리세마 23%, 티르제파타이드 25.5%였다. 중도 탈락자를 포함한 전체 환자 기준으로는 각각 20.2%, 23.6%로 집계됐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다.
티르제파타이드는 미국에서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로 판매된다. 각각 제2형 당뇨와 비만을 겨냥한다. 이미 미국 처방 건수에서 노보의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 '오젬픽' 주성분) 제품군을 추월했다.
카그리세마는 세마글루타이드와 아밀린 유사체 카그릴린타이드를 결합한 주 1회 고정용량 복합제다. GLP-1과 아밀린 이중 기전으로 단독 세마글루타이드 대비 감량 효과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번 시험에서는 카그릴린타이드 2.4mg·세마글루타이드 2.4mg 고정용량을 투여했고, 티르제파타이드는 15mg이 사용됐다.
◇장중 16% 급락…"2021년 '위고비 출시' 상승분 반납"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노보 주가는 장중 2021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2024년 고점 대비 시가총액에서 4000억달러(약 560조원) 이상이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로이터는 "2021년 위고비 출시 이후 노보가 한때 유럽 시총 1위 상장사에 올랐던 상승분을 지워버린 수준"이라고 전했다.
유니온인베스트먼트의 마르쿠스 만스 매니저는 "임상적으로 마운자로가 카그리세마보다 우수하다는 점이 입증된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기본 시나리오는 두 약물이 비슷하다는 것이었고, 낙관적 전망은 카그리세마의 우월성이었지만 열위 가능성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보는 이제 힘든 싸움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스웨덴 노드넷은행의 페르 한센 투자전략가는 "23%와 25.5%의 차이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투자자에게는 매우 중대한 격차"라며 "승자독식 구조에서 릴리가 모멘텀을 굳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기 성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덴마크 유스케은행의 헨리크 할렌그린 라우스트센 애널리스트는 "시장은 향후 노보 성장의 약 60%가 카그리세마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해왔다"며 "상당한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제프리스의 마이클 로이흐텐 애널리스트 역시 "기존 고용량 GLP-1 대비 명확한 우월성이 없다면 프리미엄 전략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카그리세마는 2030년까지 노보 전체 매출의 15~25%를 차지할 잠재력이 있는 핵심 파이프라인"이라며 "이번 결과는 인수합병(M&A)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이어 "노보가 올해 최대 350억달러(약 49조원) 규모의 M&A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노보는 이미 카그리세마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 승인 여부는 올해 말 결정될 전망이다. 허가 신청은 앞선 'REDEFINE 1' 임상 결과를 근거로 이뤄졌다. 해당 시험에서는 68주 기준 치료를 지속한 환자에서 약 23%, 중도 탈락자를 포함하면 약 20%의 감량 효과가 확인됐다.
이날 애널리스트 대상 컨퍼런스콜에서 회사 경영진은 이번 결과가 오픈라벨 설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피험자들이 자신이 어떤 약을 투여받는지 알고 있었던 만큼, 이미 널리 알려진 약물과 개발 단계 치료제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편향이 개입됐을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경영진은 카그리세마가 내년 출시될 경우 "최고 수준의 체중 감량 라벨(best weight-loss label)을 확보할 잠재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두스다르 최고경영자(CEO)는 "의약품은 결국 라벨에 따라 판매된다"며 "우리 라벨은 이번 시험이 아니라 이전 임상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그는 티르제파타이드의 25%대 감량률에 대해서도 "해당 수치는 경쟁사 라벨에 기재돼 있지 않고, 자체 임상이나 다른 시험, 실제 처방 데이터에서도 일반적으로 관찰된 바 없다"며 "현실 데이터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량 임상' 카드 남았지만…전략 수정 불가피
마틴 홀스트 랑게 최고과학책임자(CSO)는 "23% 감량 자체에는 만족한다"면서도 하반기 시작할 세마글루타이드 7.2mg을 포함한 고용량 카그리세마 임상 3상에 대한 기대를 강조했다.
그는 "추가 데이터에 따라 릴리와의 추가 헤드투헤드(직접 비교 임상)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여건은 녹록지 않다. 노보는 올해 매출·이익 증가율이 5~13%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약가 인하 압력, 경쟁 심화, 위고비·오젬픽 특허 만료가 겹친 영향이다.
무엇보다 카그리세마는 이른바 '특허 절벽' 이후를 책임질 차세대 성장 카드로 꼽혀왔다. 이번 REDEFINE 4 결과로 성장 전략 전면 재점검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