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트론(087010)과 일라이 릴리의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 '스마트데포' 기술이전 계약 체결 여부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릴리가 경구용 비만 치료제 '오포글리프론' 출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면서, 주사제 기반의 외부 협력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릴리는 최근 공시를 통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15억달러(약 2조1500억원) 규모의 사전 출시 재고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오포글리프론 물량이다. 회사는 지난해 2월에도 5억5000만달러 규모의 초기 재고를 선적재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신약 승인 전 재고 확보는 일반적인 절차이나, 이번처럼 대규모로 선제 생산에 나선 사례는 이례적이다. 미국 의약전문지 피어스파마는 릴리의 공격적 재고 축적이 과거 '마운자로'와 '젭바운드' 출시 초기 공급 부족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데이브 릭스 릴리 최고경영자(CEO)도 이달 초 실적 발표에서 "올해 2분기 미국 출시, 2027년 글로벌 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다"며 오포글리프론에 화력을 집중했다.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컨퍼런스콜에서 오포글리프론은 모두 21번 언급됐다. 지난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때와 마찬가지로 펩트론 언급은 없었다.

오포글리프론의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목표일은 4월 10일이다. 미국 외 40개국에서도 허가 신청을 마쳤다.

데이브 릭스 일라이 릴리 최고경영자(CEO)./로이터 연합뉴스

◇릴리는 '알약'에 2조 쐈는데…펩트론은 1년 넘게 '희망고문'

펩트론은 2024년 10월 릴리와 스마트데포 기술평가 계약을 체결했다. 릴리의 펩타이드 약물에 기술을 적용해 약 14개월간 평가한 뒤 기술이전 여부를 논의하는 구조였다.

스마트데포는 약물을 체내에서 서서히 방출해 반감기를 늘리는 플랫폼 기술이다. 반감기가 짧은 펩타이드 약효를 1주에서 수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특히 릴리가 판매 중인 젭바운드와의 적용 가능성이 부각되며 기대를 모았다.

기대감은 주가에 선반영됐다. 계약 발표 전 5만원 안팎이던 주가는 7거래일 만에 10만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11월 말에는 40만원에 근접했다.

하지만 기술이전 계약 체결이 예상되던 지난해 12월, 상황이 달라졌다. 펩트론은 기술평가 기간을 '약 14개월'에서 '최대 24개월'로 정정 공시했다. 이후 주가는 2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정정공시에 따르면 기술평가 계약은 오는 10월 만료된다. 회사 측은 "검토 중인 물질 외 추가 물질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물질 검토는 기존 평가가 순조로울 때 이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계약은 어디까지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평가 단계'다. 릴리는 만료 30일 전 서면 통지만으로 언제든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펩트론 관계자는 "릴리가 원하면 언제든 종료 가능한 구조인 것은 맞다"며 "현재로선 릴리의 결정만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펩트론 신공장 조감도./펩트론

◇매출 46억에 시총 6조…펩트론, '릴리 신기루' 걷히면 충격 불가피

펩트론은 생산능력(CAPA) 확충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회사는 최근 충북 청주시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내 5000평 규모 제2공장 건축 허가를 승인받았다. 총 투자 규모는 890억원이며,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재무 여력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펩트론은 지난해 3분기 마이너스(-) 156억7000만원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 폭이 51.7% 확대됐다. 부족한 운영 자금은 243억원 규모 교환사채(EB) 발행 등 외부 조달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은 46억원이다. 수익 창출 기반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대규모 증설이 병행되고 있는 셈이다. 펩트론은 지난해 LG화학(051910)을 통해 출시한 '루프원' 외에 뚜렷한 수익 파이프라인이 없다.

경쟁 환경도 녹록지 않다. 화이자는 최근 월 1회 투여 비만 신약 후보 'PF-3944(MET-097i)'의 임상 2b상 톱라인 결과를 공개했다. 암젠은 월 1회 주사제 '마리타이드'를 임상 3상 단계에서 개발 중이다. 애브비 역시 장기지속형 주사제 개발을 공식화했다.

문제는 몸값이다. 20일 종가 기준 펩트론의 시가총액은 약 6조4000억원이다. 아직 상업화 성과가 제한적인 플랫폼 기업이 단일 기술이전 이벤트에 대한 기대만으로 이 정도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반면 릴리의 또 다른 장기지속형 파트너사인 카무루스는 이미 상업화 제품으로 지난해 매출 약 3600억원, 세전이익 약 1500억원을 기록했음에도 시총은 5조~6조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업계에서는 펩트론이 릴리 외 복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동시다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계약 불발 시 주가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사안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