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128940) 박재현 대표이사가 최근 불거진 '성추행 임원 비호 의혹'과 관련해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최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국내 굴지의 제약사에서 성추행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를 즉시 하지 않은 데다 성 비위 임원에게 징계 처분을 내리지 않고 사실상 '재취업 꽃길'을 터줬다는 비판이 나오자, 박 대표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박 대표는 신 회장의 압력으로 인해 해당 임원에 대한 정당한 인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
본지는 지난 18일 서울 모처에서 박재현(57) 대표를 만났다. 1993년 한미약품 연구원으로 입사해 대표직에 오른 그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대주주의 과도한 개입이 걸림돌이 됐다"고 폭로 배경을 밝혔다.
신동국(75) 회장은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이사회의 기타 비상무이사다.
본지는 지난 13일 [단독] 성추행 신고 뭉개고 경쟁사 이직 '꽃길'…한미약품 '팔탄공장 임원 감싸기' 논란 기사가 보도된 이후 한미약품 공장 내 가해자 측근들이 제보자를 찾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한미약품그룹 한 직원은 "제보자가 아닌데도 상사로부터 직접적으로 의심을 받으니 화가 나고 해명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도 느꼈다"며 "내부에서 오해를 받고 불이익을 보게 될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 신고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처분, 제보자(공익신고자) 색출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에 따라 불법 행위다. 제보자에 대한 압박, 징계는 모두 처벌 대상이다. 기자가 제보자 색출 여부를 따져 묻자, 한미약품 홍보팀은 "제보자 색출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박재현 대표는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가 신 회장과 매우 밀착하고 있는 상황 중에 발생한 일이었다"며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처리하고자 했으나 신 회장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신 회장이 가해 임원을 비호하는 듯한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내가 녹취를 해두지 않았다면, 모든 책임을 대표인 나에게 씌우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녹취에 따르면 신 회장은 "그 사람이 여자 성폭행할 사람도 아니잖아"라며 가해자를 두둔했고, 박 대표의 징계 필요성 설명을 끊으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사건은 지난해 12월 팔탄공장 임원 A씨의 성 비위 사실이 공익 제보로 접수되며 시작됐다. 박 대표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에게 재택근무를 명령했으나, A씨는 신 회장 측근 임원으로부터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이를 무시하고 회사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대주주와의 밀착 관계를 이용해 대표이사의 적법한 인사 명령을 무력화시킨 사례"라고 지적했다.
신동국 회장은 고(故) 임성기 회장의 고향 후배로, 한미사이언스(008930) 지분 16.43%를 보유한 '키맨'이다. 임 회장의 권유로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사들였던 신 회장은 2020년 임 회장 별세 이후 상속세 문제로 촉발된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분쟁의 승패를 가르는 인물로 부상했다.
당초 그는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을 약속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단락 지었으나, 박 대표는 "실상은 불법적인 과도한 경영 개입의 연속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번 폭로가 주주들의 알 권리를 위한 결단임을 강조했다. 그는 "대주주 한 명 때문에 임성기 회장님이 세운 기업 문화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특정 대주주의 부당한 지시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직원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본지는 성추행 사건 보도 이후 한미약품 그룹 내부 직원들의 제보자 색출 정황, 주주의 알 권리, 과거 신 회장의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을 고려해 박 대표와 신동국 회장의 면담 녹취 파일을 공개하기로 했다. 성추행 피해 사실에 대한 세부 묘사와 녹취에 등장하는 가해자와 가해자 측근 실명 등만 비프음으로 편집했고, 이외엔 재가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신동국 회장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그는 구체적인 질의를 담은 문자 메시지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기사가 보도된 20일 오전, 신 회장은 연락해 와 "나는 막지 않았으며, 성추행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부당하게 개입하지도 않았다.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다만 그는 "반박 입장을 지금 전하기보다는 자료를 준비해 추후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신동국 회장과의 대화를 녹취한 이유는.
"대표이사로서 업무상 직접 녹취할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이전에 신 회장과 면담할 때 신 회장이 말이나 논리를 수시로 바꾸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고, 없던 일을 만들어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이후 신 회장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리기 위해 녹취를 해왔다. 이번 사안(팔탄공장 임원의 직원 성추행)은 중대성과 공익성이 크다고 판단해 녹취한 것이다. 녹취를 해두지 않았다면, 모든 책임을 대표인 저에게 씌우려 했을 것이다."
–팔탄공장 임원 A씨가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외부 공익 제보 채널에 신고된 게 12월이다. 이후 회사는 어떤 조처를 했나.
"우선 피해자 보호와 분리를 위해 가해자에게 징계 처분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피해자와의 접촉을 하지 말라 지시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단으로 접촉해 만나는 등 2차 가해 문제가 발생해 가해자에게 재택근무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가해자는 신 회장 측근인 임원 B씨에게 '그냥 회사에 나오라'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명령을 어기고 출근을 지속했다. 가해자가 신 회장과 밀착하고 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가해자의 성추행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만큼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확실한 징계 근거를 확보하고자 했다."
–현행법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지체 없는 조사'와 '피해자 보호 조치'는 의무다. 그런데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지시에 반하는 지시를 신 회장이 자신의 측근을 통해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독단적으로 만났다는 보고를 듣고 곧바로 가해자에게 재택근무를 명령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공장에 출근해 2차 가해 우려를 더 증폭시켰다."
–통상 임원의 비위가 확인되면 대표이사 직권으로 즉각 해촉할 수 있다.
"신고 사실을 인지한 이후 인사위원회를 열고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처리 과정에서 '신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실제 사건이 불거진 공장에선 가해자가 신 회장 비호를 받고 있어서(신 회장 라인이라) 제가 조치를 못할 거란 소문도 돌았다."
–그가 가해자를 감싼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 회장과 가해자는 대표이사인 나의 동의나 결재 없이 한미약품 공장에 관한 모든 정보를 사실상 공유하고 있었다. 신 회장이 제게 저가의 낮은 품질이 우려되는 원료를 사용해 원가를 낮추라고 지시하거나, 노후화된 설비 교체를 미루거나 품질 관련 설비 투자를 최소화하라는 지시를 했었다. 당시 저는 '품질경영 원칙론'을 들며 신 회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그러자 공장 책임자였던 가해자가 저를 패싱하고 이러한 신 회장 지시를 수행하며 신 회장과의 신뢰를 단단히 쌓았다."
–최대 주주라는 이유로 한미약품 내부 직원의 성추행 사건에도 관여할 수 있는 건가.
"(한숨 쉬며 잠시 침묵) 그래서 이달 초 신 회장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신 회장과 직접 만나 "이 일에 관여하지 말아달라"는 분명한 의사를 정중하게 전달한 것이다."
–신 회장과의 면담 녹취를 폭로하는 이유는.
"더 이상 한 명의 대주주 때문에 한미(한미약품 그룹)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한미는 신 회장이 지분의 힘으로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회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성기 회장이 어렵게 만든 한미의 기업 문화,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서 한미를 잘 지켜달라 하셨던 유지를 생각하면, 신 회장의 불법적인 경영 개입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고, 이를 다른 주주들에게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신 회장이 한미약품 그룹에 부당한 경영 개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인가.
"신 회장의 불법, 부당한 지시가 이것뿐이겠느냐. 다른 부당한 경영 개입을 해 왔다는 직·간접적인 증거들은 많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 추진 내용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다."
–신 회장에게 바라는 게 뭔가.
"특정 대주주의 부당한 불법적 지시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직 구성원이 불이익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 모든 주주에게 약속한 '선진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지금이라도 지켜달라는 것이다."
-녹취 공개 이후 파장이 예상되는데, 괜찮나.
"감당하겠다. 대표이사로서 회사에 해가 되는 일이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작년 경영권 분쟁 종식 이후, 한미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정말 전력을 다했다. 수출 계약, 국내 처방 매출과 이익, 비만 신약 출시 준비 등 여러 성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주가도 세 배 이상 오른 상황이다. 신 회장의 부당한 개입만 없다면 회사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표로서 너무나 화가 나고, 다른 주주들에게도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