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상법 개정을 앞두고 제약·바이오 업계의 자사주 소각과 처분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당국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기업들이 보유 물량을 선제적으로 정리하는 모습이다.

가장 큰 규모의 움직임은 셀트리온(068270)에서 나왔다. 셀트리온은 약 1조4633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추진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현재 보유 중인 자사주 약 1234만주 가운데 임직원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등 보상 목적 물량 약 300만주를 제외한 나머지를 정리할 계획이다.

이 중 65%에 해당하는 약 611만주는 소각하고, 35%인 약 323만주는 향후 인수·합병(M&A)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안건은 오는 3월 24일 열리는 제35기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자기주식 취득분을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힌 뒤로 현재까지 자사주 약 196만주를 소각했다.

정부와 여당은 한국 증시의 저평가 상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지난해부터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한 뒤 1년 이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임직원 보상 등 경영상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자사주를 담보로 제공하거나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인적분할 시 자사주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지배권 남용을 막는 내용도 담겼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로, 올해 상반기 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점쳐진다. 법안이 시행되면 일정 기간 내 자사주를 처분해야 하는 만큼, 기업들이 미리 소각이나 보상 방식으로 전략적 정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 오기형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11일 국회에서 3차 상법 개정안 설명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잇따라 자사주를 소각하고 있다. 유한양행(000100)은 지난달 5일 공시를 통해 보통주 32만836주(약 362억원 규모)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5월 253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데 이은 두 번째 조치다.

회사는 2027년까지 평균 주주환원율 30% 이상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7년까지 자사주 1%를 소각하고 주당배당금을 지속해서 증액한다.

휴젤(145020)파마리서치(214450)도 지난해 각각 30만주(537억원), 12만주(627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한편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앞두고 우호 세력 확보를 위한 맞교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자사주는 회사가 보유할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처분하는 순간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구조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 전략으로 해석된다.

대웅(003090)은 최근 광동제약(009290)과 주식을 상호 교환한 데 이어, 자사주를 현물출자 방식으로 처분해 유투바이오(221800) 지분을 확보했다.

광동제약 역시 휴메딕스(200670), 동원시스템즈(014820)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우호 지분을 늘렸다. 환인제약(016580)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도 유사한 방식으로 자사주를 처분했다.

업계에서는 상법 개정이 현실화할 경우 자사주를 활용한 재무·지배구조 전략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자사주 소각 확대가 주주가치 제고 신호로 해석될 수 있지만, 맞교환 등 다양한 방식이 병행되면서 기업별 대응 전략이 뚜렷하게 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바로 소각하면 최대주주의 상대적 지분율이 희석돼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는 반면, 다른 기업과 맞교환하면 의결권이 살아난 주식이 우호 지분으로 전환돼 지배권을 강화활 수 있다"면서도 "다만 소각 대신 맞교환을 택하는 경우 주주가치 제고보다는 규제를 우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어 향후 시장의 평가와 소액주주 반응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