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현장에서 기술을 쌓아온 동생과, 한국 대기업에서 컨설팅을 해온 제가 각자의 한계를 느끼던 시점에, 미국에 있던 동생이 발굴한 아이템과 제가 한국에서 맡을 역할이 맞아 떨어졌고, 40대 중반에 남매가 함께 창업에 나섰습니다."

4일 서울 구로구 엔벤트릭 사옥에서 만난 엔벤트릭의 민지영(왼쪽), 민성우 각자 대표./염현아 기자

민지영 엔벤트릭 대표는 지난 4일 서울 구로구 엔벤트릭 사옥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한국과 미국에서 각자 전혀 다른 일을 하던 남매였지만, 혈관을 통한 정밀 시술 의료기기 시장의 가능성과 동생의 현장 기술력을 계기로 함께 창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뇌경색과 뇌출혈 등 뇌혈관 질환은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발생한다. 응급 상황에서는 머리를 절개하는 개두 수술 대신, 허벅지 동맥을 통해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삽입해 뇌혈관까지 접근하는 '혈관 중재 시술'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현재 심·뇌혈관 카테터를 비롯한 관련 의료기기는 미국 존슨앤드존슨메디컬(J&J MedTech), 메드트로닉, 애보트 등 해외 기업들이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다만 뇌혈관은 매우 가늘고 굴곡이 심해, 카테터가 얼마나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병변 부위까지 도달하느냐가 시술 성공률과 안전성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는 기존 제품의 한계를 보완한 새로운 기기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주목한 국내 스타트업 엔벤트릭은 뇌혈관 중재 의료기기의 국산화에 도전했다.

엔벤트릭은 남매인 민지영·민성우 대표가 2019년 함께 설립한 혈관계 의료기기 기업이다. 동생인 민성우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J&J메디컬과 애보트에서 15년간 근무하며 의료공학 분야 경력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접한 심혈관 카테터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뇌혈관 시장 진출을 구상했고, 당시 LG에서 20년간 프로세스 혁신(PI) 컨설팅을 수행하던 누나 민지영 대표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전문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은 역할도 명확히 나눴다. 민지영 대표는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조직 운영과 사업 구조를 책임지고, 민성우 대표는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기술 개발과 제품 전략을 맡고 있다. 기술과 경영을 분담한 각자 대표 체제가 엔벤트릭의 특징이다.

민 대표 남매는 심혈관 시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고령화로 치료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뇌혈관 질환 시장에 주목했다. 기존 심혈관 카테터 기술을 기반으로 충분히 고도화된 뇌혈관 카테터를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해외 제품에 의존하던 뇌혈관 중재 기기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엔벤트릭의 뇌혈관 치료 제품군 3종으로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 시연 영상./엔벤트릭

엔벤트릭의 핵심 제품은 뇌혈관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한 카테터와, 뇌혈관 내 혈전을 제거하는 스텐트 리트리버다. 회사는 뇌동맥류나 뇌경색 시술 시 허벅지 동맥을 통해 삽입한 치료기기가 병변 부위까지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전문 카테터(DAC) '에보글라이드(EvoGlide)'를 개발해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았다.

에보글라이드는 기존 미국 경쟁사 제품보다 관이 더 얇고 부드러워, 허벅지 동맥에서 뇌혈관까지 평균 30초 내외로 도달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타사 제품 대비 약 2배 빠른 수준이다.

민성우 대표는 "시술 중 막힘 없이 혈관을 따라 부드럽게 올라가도록 개발한 점에 대해 의료진 평가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앞서 2024년 에보글라이드와 함께 혈관 삽입 시 출혈을 줄이기 위한 지혈 밸브 '슈페리어'와 '플렉스'의 인허가를 받아 판매 중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뇌혈관 시술 의료기기를 잇따라 선보였지만, 의료진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의료진은 카테터가 최대한 얇고 부드러워 뇌혈관까지 신속하게 진입하는 동시에, 혈전에 도달했을 때는 이를 단단히 포획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펴지기를 요구한다.

민성우 대표는 이러한 상반된 요구를 제조 공정 단계에서 기계공학적으로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보글라이드에 이어 뇌혈관 내 혈전을 제거하는 스텐트 리트리버 '울트리바(Ultriva)'를 개발했다"며 "대혈관이 막힌 허혈성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허벅지 동맥을 통해 삽입한 관으로 뇌 혈전 부위에서 그물망 형태의 스텐트를 펼쳐 혈전을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울트리바 역시 현재 식약처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또 엑스레이 영상으로 혈전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부착하는 마커가 혈관 통과 과정에서 걸리지 않도록 쉽게 구겨지는 구조로 설계한 점도 특징이다. 이를 통해 시술 정확도와 편의성을 동시에 높였다는 설명이다.

엔벤트릭 뇌혈관 치료 제품군. 왼쪽 상단부터 뇌혈관 중재 시술용 원위부 접근 카테터(DAC) '에보글라이드', 혈전 제거용 의료기기 '울트리바', 지혈 밸브 '슈페리어'와 '플렉스'./엔벤트릭

이들 제품의 기반이 되는 핵심 기술은 엔벤트릭의 독자 플랫폼 'H-Flex 8'이다. 형상기억합금 코일과 브레이딩 구조를 결합하고, 카테터를 8개 구간으로 나눠 각 구간의 특성을 달리 설계했다. 민성우 대표는 "좁고 굴곡진 혈관에서도 안정적으로 따라가면서 시술 중 카테터가 꺾이는 현상을 줄였고, 넓은 내경을 확보해 시술 안정성과 효율성도 높였다"고 설명했다.

엔벤트릭은 올해 안에 뇌혈관 치료 제품 4종에 대한 인허가를 획득해 순차적으로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개별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관련 제품군을 묶어 국내외 시장에서 '시스템 단위'의 경쟁력을 갖춘다는 전략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동남아, 중동 등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엔벤트릭은 이 같은 사업성을 바탕으로 기업공개(IPO)도 준비 중이다. 민지영 대표는 "주관사 선정을 마치고 기술성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거래소에 예비심사를 청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