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에피스 전경. /삼성바이오에피스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이 '총성 없는 특허 전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거 빅파마(거대 제약사)의 특허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던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이제는 정면 승부를 통해 '특허 철옹성'을 뚫어내고 있다. 단순한 복제약 생산을 넘어,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빅파마의 견제를 넘어서고 실리를 챙기는 모양새다.

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는 최근 미국 리제네론과의 특허 분쟁을 종결지었다. 양측은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여왔으나, 지난 3일 특허법원 판결 선고를 불과 9일 앞두고 전격 합의하며 소송을 취하했다.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리제네론

◇ 14조 원 시장 뚫었다… 삼성에피스의 '실리 챙기기'

이번 합의는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협상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일리아는 연간 글로벌 매출이 14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리제네론은 지난해 1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시장 진입을 막아섰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항소심 선고 직전 리제네론이 합의를 택한 것은 패소 리스크를 줄이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이번 합의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불확실성을 해소했다. 지난달 30일 양사 합의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지역에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제품명 아필리부·오퓨비즈)를 출시할 수 있게 됐다. 당장 오는 4월부터 유럽 주요 국가, 5월부터는 한국을 제외한 기타 국가에 순차적으로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 선점에 나선다.

SK바이오사이언스 송도 글로벌 R&PD 센터 전경./SK바이오사이언스

◇ SK바사, 화이자·모더나 상대로 '연쇄 승소'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는 아예 글로벌 백신 명가들을 상대로 법정에서 승기를 잡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5월 미국 화이자와의 폐렴구균 백신 원액 관련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과거 2017년 첫 소송 당시에는 화해(합의)를 통해 2027년까지 제품 출시를 미루는 등 한발 물러섰지만, 2020년 화이자가 "연구용 원액 수출도 합의 위반"이라며 제기한 2차 소송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1심 패배를 딛고 2·3심에서 연달아 승소하며 독자적인 사업 기회를 확보했다.

지난해 4월에는 '메신저리보핵산(mRNA)의 강자' 모더나를 상대로 낸 특허 무효 심판에서도 이겼다. 모더나가 국내에 등록한 mRNA 제조 기술 특허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특허 장벽을 허물고 우리만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류마티즘 관절염 치료제 휴미라. /애브비

◇ "특허 소송은 숙명"… 치열해지는 '머니 게임'

전문가들은 K-바이오의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특허 분쟁은 더욱 빈번하고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빅파마들이 특허 만료 시점에 맞춰 제형 변경, 용도 추가 뿐만 아니라 각종 소송을 제기하며 특허를 방어하는 전략으로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빅파마끼리의 난타전도 흔하다. 애브비(휴미라)와 암젠(암제비타), 암젠(프롤리아)과 산도즈 등은 서로 물고 물리는 소송전을 벌인 뒤 시장 분할이나 로열티 지급 등의 조건으로 합의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해외 제약사가 소송을 걸어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의 기술이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방증"이라며 "바이오시밀러 출시 지연은 결국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기업들이 정교한 특허 전략과 법적 대응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