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기업 머크(Merck, MSD) 로고 앞에 주사기와 바이알이 놓여 있다. /로이터

미국 대형 제약사 머크(MSD)가 3일(현지 시각)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 특허 만료 이후를 대비한 성장 전략을 공개했다.

회사는 향후 10년간 신규 파이프라인을 통해 연간 700억달러(약 101조원) 이상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미약품(128940)이 기술을 이전한 대사기능 이상 지방간염(MASH) 치료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MK-6024)'를 유망 R&D 자산 목록에 올렸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JPM 2026)'에서 MSD가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개발 차질 루머가 돌며 한미약품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하지만 MSD가 이번 실적 발표에서 에피노페그듀타이드(MK-6024)를 임상 2상 단계 주요 자산으로 올려, 국내 일부 투자자들이 제기한 우려는 해소됐다는 평가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약효 지속 기술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과 글루카곤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원리의 MASH 치료 후보물질로, 2020년 기술 수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임상 2b상을 진행했다.

MSD는 이날 발표에서 향후 성장 기회로 항암 분야 250억달러 이상, 심혈관·대사질환 200억달러, 감염병 150억달러 규모의 잠재 시장을 제시하며 대사질환 치료제 개발 의지를 드러냈다. 한미약품도 "MSD와의 파트너십은 순항 중"이라며 "상반기 2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MSD의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자료 중 임상 2상 이상 단계의 연구·개발 파이프라인. /MSD

이번 발표에서 알테오젠(196170)의 기술을 적용해 기존 정맥주사(IV) 제형 항암제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개발한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의 매출 기여도도 확인됐다. MSD는 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는 317억달러(약 46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7% 늘었다. 키트루다 큐렉스는 작년 3분기에 출시돼, 4000만달러(약 5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4분기 매출액은 3500만달러(약 507억원)다.

MSD는 오는 4월에 키트루다 큐렉스가 영구 J코드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에서 병원 투여용 주사제가 보험 급여를 청구하기 위해 필요한 공식 코드인데, J코드가 확정되면 병원과 보험사 간 청구 절차가 간소화돼 미국 내 처방 확대와 매출 성장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MSD는 이날 "최근 수년간 가장 넓고 탄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며 중장기 성장 자신감을 드러냈다. 로버트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키트루다 독점권 상실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그 이후에도 실질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알테오젠 기술(ALT-B4)이 적용된 '키트루다(Keytruda) 피하주사(SC) 제형'인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머크

MSD는 최근 베로나파마(Verona Pharma)와 시다라 테라퓨틱스(Cidara Therapeutics)를 인수하며 성장 동력을 보강했다. 이들 인수를 포함한 신규 성장 동력들이 2030년대 중반까지 연간 700억달러 이상의 매출 잠재력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는 키트루다가 정점 매출이 예상되는 2028년 약 350억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키트루다는 2028년 주성분 특허 만료(LOE)가 예정돼 있으며 다수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MSD는 2029년까지 유효한 추가 특허 2건을 보유하고 있어 방어 가능성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MSD의 작년 연간 매출은 650억달러(약 94조원)로 전년 대비 1% 증가했다. 동물의약품 부문을 제외한 제약 매출은 581억달러(약 84조원) 규모다.

항암제 중에서는 신약 '웰리렉(Welireg)'의 작년 4분기 매출이 2억2000만달러로 전년보다 37% 늘었다. 해외 시장 출시가 본격화되며 처방이 늘어난 영향이다.

백신 부문에서는 성인용 폐렴구균 백신 '캡박시브(Capvaxive)'가 성과를 냈다. 2024년 승인된 이 제품은 지난해 7억59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반면, HPV 백신 '가다실(Gardasil)'은 부진을 이어갔다. 작년 가다실 매출은 52억달러로 전년보다 39% 감소했다. 중국과 일본에서 수요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폐동맥고혈압(PAH) 치료제 '윈레브에어(Winrevair)'도 블록버스터 가능성을 입증했다. 2021년 115억달러에 인수한 액셀러론(Acceleron)을 통해 확보한 이 약물은 작년 매출 14억달러를 기록했다.

MSD는 2026년 매출 전망치(가이던스)를 655억~670억달러를 제시했다. 추가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열어뒀다. 데이비스 CEO는 "100억~150억달러 규모의 거래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과학적으로 매력적인 자산이라면 더 큰 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약 개발 기업 레볼루션 메디슨(Revolution Medicines) 인수설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