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 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기업)에 기술을 수출했다가 반환된 후보물질(약물)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꽃을 못 피우고 돌아온 물질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적응증(치료 대상 질환)으로 확대하거나 용법을 바꿔 개발하는 '리포지셔닝(repositioning)'·'리퍼포징(repurposing)' 전략이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반환된 후보물질 개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업계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도 나온다.
2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128940), JW중외제약(001060), 유한양행(000100) 등이 기술 반환된 물질을 다시 개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선 한미약품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작용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에 대한 임상을 마치고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 허가를 신청해 승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에페글레나타이드를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 수출했지만, 사노피가 2020년 글로벌 임상 3상을 중단하면서 권리가 반환됐다.
한미약품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던 이 물질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의 급성장에 맞춰 비만 치료제로 전환해 다시 개발을 추진했다. 회사는 기존 임상 데이터에서 확보한 안전성을 토대로 국내 임상 3상을 진행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2026년 국내 출시가 회사의 목표다.
반환된 후보물질을 다시 기술 수출한 사례도 있다. 한미약품이 미국 머크(MSD)에 기술을 수출해 개발되고 있는 대사 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 후보 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Efinopegdutide)'가 대표적이다. 이는 한미약품이 지난 2015년 미국 제약기업 존슨앤드존슨(J&J) 산하 J&J이노베이티브메디슨(옛 얀센)에 기술 수출했다가 2019년에 반환된 것이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원래 비만 치료제로 개발해 온 GLP-1·글루카곤 수용체 이중 작용 신약 후보 물질인데, 한미약품은 반환 이후 간이 딱딱하게 굳는 증상인 간 섬유화 억제 원리에 주목해 MASH 치료제 개발로 전략을 바꿨다. 이후MSD가 개발을 이어왔으며, 지난달 글로벌 임상 2상을 종료했다.
최인영 한미약품 R&D센터장은 "에피노페그듀타이드에 대한 주요 지표(톱라인, Top line) 결과는 올 상반기 주요 학회에서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술 반환은 증권 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들의 신약 개발 전략과 시장 환경이 수시로 바뀌면서 수출한 신약 후보 물질의 개발이 중단되거나 반환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한미약품 사례처럼 반환된 약물을 다른 기업이 다시 사들이는 재수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
JW중외제약도 과거 기술 수출했다가 돌아온 아토피피부염 신약 후보물질 JW1601을 안과 질환 치료 신약으로 개발을 추진 중이다. 덴마크 제약사 레오파마가 2018년 전임상 단계에서 사들였다 2023년 기술 이전 계약을 해지하고 권리를 반환했다. 기술 이전 계약으로 JW중외제약이 받은 선급금 규모는 1700만 달러(약 246억원)였다.
JW중외제약은 새로운 적응증 확보 가능성을 포함한 향후 개발 방향성을 검토해 왔고, 안 질환으로 방향을 전환해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JW1601은 면역·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히스타민 H4 수용체를 표적으로 면역세포의 활성과 이동을 억제하는 이중 작용 치료 원리를 가졌다.
회사 측은 "현재 국내 임상 2상 단계를 준비 중"이라며 "다만 개발 전략상 구체적인 표적 질환을 밝힐 수는 없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2019년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수출했다가 지난해 반환된 MASH 치료 후보물질 YH25724의 자체 개발을 준비 중이다. 회사 측은 "YH25724의 임상 진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YH25724는 전임상시험에서 간에 지방이 쌓인 지방간과 간 조직이 굳어지는 섬유화를 함께 개선하는 효과를 입증했고,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글로벌 임상 1상을 마쳤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으로 초기 임상시험을 수행한 경험이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회사는 판단했다.
애초 기술 수출(이전) 계약과 달리 파트너사가 개발을 완주하지 않고 반환하면, 해당 신약 개발 프로젝트는 미완성이 된다. 국내 기업이 쥐는 돈은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선급금)과 일부 마일스톤에 그친다.
업계 관계자들은 "파트너사가 기술을 반환하는 사유는 다양하기 때문에, 기술 반환이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선급금을 비롯한 일부 수익을 확보했고, 빅파마가 주도한 임상을 통해 해당 물질의 안전성과 개발 가치를 검증했다는 이점도 있어 반환 이후 개발 전략에 따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노영수 한미약품 종양 임상 연구·개발 총괄 이사는 "기술 반환 이후 리포지셔닝·리퍼포징은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사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와 국내 제약사 간 갑·을 구도로 인해 국내사들이 기술 반환 사유를 적극적으로 따져 묻지 못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기업들이 기술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후기 임상 개발 역량뿐만 아니라 글로벌 협상 전략도 함께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