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와 노사가 지난 22일 경기 화성시 향남제약공단 한국제약협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린 '노사 현장 간담회'에서 '의약품 생산 최전선에서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화성=박수현 기자
"2012년 약가 일괄 인하 당시, 전 직원이 국회 앞에 모여 투쟁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많은 제약사가 무너졌고,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장훈 유유제약 노동조합위원장
"이번 개편안으로 저희 향남공단 매출이 10%만 줄어도 5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3인 가구 기준으로 무려 1500명의 생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입니다."
서정오 한국제약협동조합 전무이사 겸 향남제약공단 관리소장

약가제도 개편안을 둘러싼 정부와 제약업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를 두고 보건복지부와 평행선을 달려온 제약업계가 집단 대응을 예고하면서 긴장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업계가 공개적으로 '투쟁'을 언급한 것은 2012년 약가 일괄 인하 이후 14년 만이다.

당시 제약업계는 대국민 서명운동을 통해 수십만명의 서명을 모았고, 장충체육관에서 장외집회를 열었다. 100여곳이 넘는 제약사가 참여하는 공동 행정소송도 결의했다. 하루 동안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까지 거론될 만큼 반발은 거셌다. 그러나 정책은 그대로 시행됐다. 9000여개 품목에 대해 1조7000억원 규모의 약가 인하가 한꺼번에 단행됐다.

그 결과,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던 제약사들의 매출 증가율은 이후 수년간 0%대에 머물렀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등 수익성 지표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업계는 이와 유사한 약가 인하가 14년 만에 다시 추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제도를 시행해 향후 3~4년간 약 4500개 품목의 약가를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총 1조원 규모의 약품비 절감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 5개 단체는 지난 20일 향후 대응을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했다.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집단 행동에 나설지 여부 역시 비대위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노연홍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지난 22일 경기 화성시 향남제약공단 한국제약협동조합 회의실에서 '노사 현장 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화성=박수현 기자

이틀 뒤인 지난 22일, 비대위는 경기 화성 향남제약공단에서 노사 간담회를 열었다. 향남제약공단은 1985년 조성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의약품 제조 산업단지다. 국내 의약품 생산의 약 30%를 담당하며, 36개 기업에서 48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온 '투쟁'이라는 표현이 가볍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동인 동화약품 노동조합위원장은 간담회 현장에서 "제약산업 현장과 연대해 약가제도 개편으로 인한 고용 불안과 구조조정에 맞서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국회 토론회와 국내외 기자회견, 현장 간담회, 제약산업계 공동행동투쟁집회활동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연홍 비대위원장은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며 "현장의 우려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

◇'3조6000억원·1만4800명'…업계가 말하는 약가 인하의 대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제네릭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낮추고, 실거래 가격뿐 아니라 시장 경쟁 상황까지 반영하는 약가 사후관리 체계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은 약가제도 개편안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했다. 해당 안은 오는 2월 건정심 의결을 거쳐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제네릭 의약품은 자체 생동시험과 등록 원료 사용 조건을 충족할 경우, 등재 순서 20번째까지 오리지널 약가의 53.55%를 인정받고 있다. 산정률이 40%대로 낮아질 경우, 동일한 물량을 판매하더라도 매출과 수익성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대위는 정부안이 시행될 경우 기등재 의약품 2만1000여개의 약가가 인하돼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24년 전체 약품비 26조8000억원에 제네릭 비중 53%와 최대 인하율 25.3%를 적용해 산출한 수치다.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4.8%, 순이익률이 3%에 그치는 상황에서 업계는 이를 감내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약가 인하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약산업은 매출 10억원당 고용유발계수가 4.11명으로, 반도체(1.6명), 디스플레이(3.2명)보다 높다. 비대위는 이를 기준으로 약 1만4800명의 고용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종사자 12만명 가운데 10%를 웃도는 규모다.

특히 생산시설과 연구시설이 전국 17개 시·도에 분포해 있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원석 대원뉴팜 대표는 "중소 제약사들은 전국 생산 현장에서 정규직 비중 95%에 달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준 동광제약 노동조합위원장이 지난 22일 경기 화성시 향남제약공단 한국제약협동조합 회의실에서 '노사 현장 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화성=박수현 기자

비용 압박이 저가 해외 원료 사용 확대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4년 기준 31.4%에 불과해, 관련 산업은 이미 존폐 기로에 서 있다는 평가다. 오상준 동광제약 노동조합위원장은 "약가 인하가 현실화되면 중소 제약사들은 중국산 등 값싼 원료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저가 경쟁 재연 우려…보상책 실효성은 '미지수'

업계는 약가 사후관리 강화가 유통 현장의 가격 압박을 더욱 키울 것으로도 보고 있다.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와 맞물릴 경우 병원과 약국의 인하 요구가 거세지고, 이를 맞추기 위한 초저가 경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과거 국공립병원 공개입찰 과정에서 일부 의약품이 극단적으로 낮은 가격에 낙찰된 이른바 '1원 낙찰'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장 연동형 사후관리 체계가 도입되면 약가 조정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약가가 반복적으로 손질될 경우, 중장기 가격 전략과 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개편안이 정책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인 동화약품 노동조합위원장은 "정부는 혁신 신약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강조하지만, 수익 기반을 약화시키면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동인 동화약품 노동조합위원장이 지난 22일 경기 화성시 향남제약공단 한국제약협동조합 회의실에서 '노사 현장 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화성=박수현 기자

정부가 연구개발 생태계 육성을 위해 제시한 '우대 가산 확대'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부는 기존 약가차등제도를 폐지하고 혁신형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비율에 따라 가산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경우 최초 제네릭 등재 시 가산 기간이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업계는 '3년 가산'이 제네릭 시장의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주장한다. 노연홍 비대위원장은 "제네릭은 등재 이후 실제 처방이 늘어나기까지 최소 3년이 걸린다"며 "그 이전에는 사실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산 기간 종료 이후 제네릭 약가가 일괄적으로 40% 수준으로 낮아지는 구조라면, 투자 회수가 시작되는 시점에 약가가 급격히 떨어져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약사들의 수익 기반인 제네릭 가격을 낮추기보다, 신약 개발이 가능한 환경 조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약사 출신으로 제21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전혜숙 경기도일자리재단 이사장은 "세제 지원이나 임상 1·2상 지원 등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개편안 시행 유예와 함께 약가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을 공동으로 검증하고, 산업 의견을 제도적으로 반영할 협의 구조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조용준 비대위 부위원장은 "기업들이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며 "우리 제약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아닌 진흥의 관점이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