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한미약품(128940)의 기업가치가 다시 '임상 데이터'로 평가받는 해가 될 전망이다. 올해 한미약품은 비만,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희귀질환 등 주요 파이프라인의 임상 결과 공개 일정을 앞두고 있다.
그룹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그동안 축적돼 온 신약 연구개발 성과가 본격적으로 시장의 평가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한미그룹은 고(故) 임성기 창업주 별세 이후 오너 일가 간 경영권 갈등을 겪으며 한때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다만 지난해 초 지분 구도가 정리되면서 지배구조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가 신약 기대감 구간이었다면, 올해는 실제 성과 공개의 해"라고 말했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올해는 임상 성과의 가시성과 신약 상업화 모멘텀이 동시에 확보돼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볼 시점"이라고 했다.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64주 투여 결과 상반기 공개…하반기 출시
가장 먼저 시장의 평가를 받는 파이프라인은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다. 한미약품은 올해 상반기 중 64주 추가 투여에 대한 임상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체중 조절 호르몬인 GLP-1을 기반으로 한 주 1회 주사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 등이 이미 상용화돼 있다. 한미약품은 아시아인의 체형과 비만 특성을 반영한 임상 데이터를 강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0월 임상 3상 핵심 결과를 공개했다. 당뇨병이 없는 성인 비만 환자에게 40주간 투여한 결과, 평균 체중은 약 8% 감소했고, 전체 환자의 60% 이상이 체중의 5% 이상을 감량했다. 위약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해당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국내 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며,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에 포함돼 있어 심사 일정이 단축될 가능성도 있다.
변수는 글로벌 경쟁 환경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는 2028년 물질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어, 이후 제네릭 출시 가능성이 거론된다. 가격 경쟁이 확대될 경우 시장 환경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에페글레나타이디드가 비교적 낮은 위장관(GI) 부작용을 보였다는 점과 함께, 한미약품이 원료의약품부터 생산·유통·영업까지 수직계열화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약가 경쟁 외에도 처방 신뢰도와 공급 안정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민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를 연간 약 1조2000억원으로 가정할 경우,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올해 4분기 약 249억원의 매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MSD 기술수출' MASH 치료제, 2b상 결과 공개 앞둬…개발 방향 가늠대
비만 치료제 다음으로 주목받는 파이프라인은 MASH 치료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다. 이 후보물질은 지난해 말 임상 2b상을 마쳤으며, 올해 상반기 중 결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한미약품이 2020년 미국 머크(MSD)에 총 8억70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약물이다.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개발·판매 권리는 MSD가 보유하고 있으며, 한미약품은 임상 단계별 마일스톤과 로열티를 받는 구조다.
앞서 공개된 임상 2a상에서는 간 지방 함량(LFC) 감소에서 경쟁 약물 대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투여한 환자군의 간 지방량은 평균 72.7%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은 42.3% 감소에 그쳤다.
다만 MASH 환자의 상당수가 당뇨병을 동반하는 만큼, 혈당 조절 능력(HbA1c 개선) 역시 주요 평가 지표로 꼽힌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아직 이 부분에서 경쟁 약물 대비 뚜렷한 우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간 지방 감소와 혈당 개선을 동시에 입증하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최근 MSD가 JPM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별도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경계심도 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2b상 결과를 통해 3상 진입 여부와 향후 개발 전략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희귀질환 파이프라인도 임상 분기점…'에페거글루카곤' 2b상 결과 대기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치료제 '에페거글루카곤'이 임상 분기점에 들어섰다. 선천성 고인슐린혈증은 인슐린 과다 분비로 저혈당이 반복되는 질환으로, 주로 영유아와 소아에서 발생한다.
한미약품은 이 질환을 주 1회 주사로 관리할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 중이며, 연내 임상 2b상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에페거글루카곤은 미국·유럽·한국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고, 미 식품의약국(FDA)의 소아희귀질환 치료제 지위도 확보했다.
지난해 5월 공개된 임상 2상 중간 분석 결과에서는 저혈당 발생 빈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치료 8주 후 혈당이 70mg/dL 이하로 떨어지는 저혈당 발생은 약 72% 줄었고, 중증 저혈당은 87% 이상 감소했다.
한편 하반기에는 차세대 비만 치료 후보물질인 'HM17321'과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의 임상 1상, 임상 2b상 결과도 공개될 예정이다.
HM17321은 식욕 억제 중심의 기존 비만 치료제와 달리, 근육량 증가와 지방 분해를 동시에 유도하는 기전을 기반으로 한다.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는 체중과 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세 가지 호르몬 경로를 동시에 표적한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HM17321은 기술 이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파이프라인으로, 임상 1상 데이터 공개 이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 여부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