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글로벌 제약사(빅파마)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자사의 주력 면역항암제 '젬퍼리(Jemperli)'의 운명을 한국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에 걸었다. 기존 정맥주사(IV) 방식을 피하주사(SC)로 바꾸기 위해 알테오젠의 'ALT-B4' 기술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알테오젠(196170)은 GSK 자회사와 면역항암제(PD-1 억제제)젬퍼리에 자사의 SC 제형 전환 기술 'ALT-B4'를 적용하기 위한 기술 수출(L/O)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ALT-B4는 고용량 항체 의약품을 피하로 투여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른 젬퍼리가 굳이 제형 변경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포화 상태에 이른 PD-1 억제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빅파마의 치밀한 계산과 '특허 방어'라는 생존 본능이 깔려 있다.
◇ '레드오션' 된 PD-1 시장… GSK의 돌파구는 '편의성'
젬퍼리는 GSK 항암제 사업의 심장과도 같다. 특히 자궁내막암 치료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환자의 전체생존기간(OS·치료 시작부터 사망까지의 기간) 연장을 임상에서 유일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실제 젬퍼리 투약군의 생존 기간 중앙값은 44.6개월로, 기존 치료법(28.2개월)을 압도했다. 이 같은 효능을 앞세워 젬퍼리는 미국과 유럽 시장을 휩쓸며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6억 파운드(약 1조 1900억원)를 기록했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다. '키트루다(MSD)', '옵디보(BMS)'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단순히 약효만으로 점유율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왔다. 이른바 '성숙기'에 접어든 PD-1 시장에서 GSK가 택한 차별화 전략은 바로 '투약 편의성'이다.
기존 정맥주사는 환자가 병원 침대에 누워 30분 이상 링거를 맞아야 한다. 반면 알테오젠의 기술을 적용한 피하주사는 단 1~2분이면 투약이 끝난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병원 회전율을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다. 의료 현장의 선호도가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다.
◇ 특허 수명 늘리는 '에버그리닝' 전략… 韓 기술이 열쇠
더 결정적인 이유는 '특허'다. 제약사 입장에서 제형 변경은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새로운 제형(SC)으로 신약 허가를 다시 받으면 독점 판매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라 부른다.
GSK가 수많은 파트너 중 알테오젠을 택한 배경에는 '안전한 길'을 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알테오젠의 ALT-B4 기술은 이미 세계 1위 항암제인 MSD의 '키트루다' SC 제형 개발에 적용돼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의 검증을 마친 상태다.
이번 계약으로 글로벌 빅파마의 항암제 제형 전략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알테오젠의 ALT-B4 글로벌 파트너사는 MSD(미국 머크), 산도즈, 다이이찌산쿄, 아스트라제네카(AZ)에 이어 GSK의 자회사 테사로까지 총 5곳으로 늘었다.
전태연 알테오젠 대표는 "의약품은 하나지만, 우리 기술은 플랫폼이기에 여러 블록버스터 약물에 동시다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며 "테사로(GSK 자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우리 기술의 범용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