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정부가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을 위해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전면 손질하겠다고 나섰다. 제약업계에서는 "방향은 맞지만, 충분한 보호인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가격을 일부 보완하는 데서 그칠지, 아니면 적자를 감수하지 않고도 생산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로 갈지에서 이번 개편의 성패가 갈릴 것이란 지적이다.

◇없으면 안 되는데, 팔수록 손해인 약

필수의약품이라 하면 많이 팔릴 것 같지만, 제약사들은 "만들수록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필수'의 기준이 사용량이 아니라 대체 가능성에 있기 때문이다.

환자 수가 많지 않더라도, 그 약이 없으면 치료 자체가 막히는 상황이 적지 않다. 응급·중증 치료에 쓰이는 일부 마취제나 해독제, 희귀 감염병 치료제 등이 대표적이다. 결핵 치료제처럼 환자 수 감소로 사용량이 줄어든 약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문제는 수요는 적은데, 생산 부담은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사제나 무균 제제는 소량 생산에도 설비와 인력을 상시 유지해야 해, 판매량이 줄수록 단위당 비용이 급격히 높아진다. 정부가 퇴장방지의약품이라는 별도 제도로 생산을 붙잡아온 이유다.

그래픽=손민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된 품목은 모두 622개다. 주사제가 348개로 가장 많고, 내복제 224개, 외용제 50개가 뒤를 잇는다.

내복제 전체 품목의 25%는 34원 이하, 절반은 60원 이하, 75%는 107원 이하에 분포한다. 주사제의 중앙값은 1343원, 75% 지점은 1762원이다. 외용제의 중앙값은 1853원, 75% 지점은 6053원 수준이다.

◇20년째 제자리인 원가 보전, 필수약은 하나둘 퇴장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정부는 약가 조정을 통해 일정 수준의 원가 보전을 해준다. 하지만 제약사가 실제로 쓴 돈이 그대로 약가에 반영되는 구조는 아니다. 각 비용 항목별로 제약사가 제출한 금액과 심사 기준에 따라 산출된 금액 가운데 더 낮은 수준만 인정된다. 정부 기준을 넘는 비용은 실제로 발생했더라도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약가 인상에도 상한이 있다. 원가 분석 결과가 나오더라도 해당 품목의 상한금액은 동일 성분·제형 내 최고가를 넘을 수 없고, 같은 제제에서 여러 품목이 동시에 신청될 경우에는 상한금액 평균과 개별 품목의 원가 분석 금액 중 더 낮은 가격이 적용된다. 연간 청구액이 1억원 미만인 초저가 의약품에 한해 일부 완화 장치가 있지만, 적용 대상은 제한적이다.

이 제도는 2000년 도입된 이후 20년 넘게 큰 틀에서 유지돼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료 가격과 인건비, 에너지 비용이 동시에 뛰었고 의약품 품질 기준도 한층 강화됐지만, 제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생산·공급 중단이 보고된 의약품 가운데 퇴장방지의약품은 66개다. 전체의 약 10% 수준이지만, 정부가 별도로 퇴출을 막아온 필수의약품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그래픽=손민균

◇한계 인정한 정부, 대상·보전 범위 넓힌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해 말 제도 개편 방향을 내놨다. 우선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기준선을 10% 상향하고, 국가필수의약품 가운데 보건의료상 중요도가 높은 품목은 직권으로 우선 지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원가 보전 방식도 일부 손질한다. 원료 가격 인상분을 보다 신속하게 반영하고, 연간 청구액 기준을 현행 1억원에서 5억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책 가산도 최대 7%까지 새로 도입해 보전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제조경비 산정 방식도 바꾼다. 노무 시간 대신 기계 가동 시간을 반영하고, 시설 투자 비용을 원가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한다. 노무비 역시 법정 근로시간 초과분 미적용 방식에서 실제 투입된 직접 노무시간을 반영하는 쪽으로 바꾼다.

◇구조는 그대로…"이익 남길 수 있어야"

제도 손질 자체에 대해서는 업계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그동안 기준에 걸려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던 일부 품목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인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정기준선을 10% 상향하는 데 그친 점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년 넘게 동결돼 온 기준을 감안하면, 10% 상향은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원가 검토 기간이 길고 입증 절차가 복잡한 구조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익을 계산하는 기준이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의 약가를 조정할 때 원가를 반영하긴 하지만, 그 위에 인정되는 이익은 해당 의약품을 만드는 데 실제로 투입된 비용이 아니라, 회사 전체 자본 가운데 그 품목에 배분된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필수의약품은 비용만 맞춰준다고 생산이 이어지지 않는다"며 "설비를 계속 가동하고 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GMP)에 맞는 시설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재투자까지 가능한 이익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장과 설비에 막대한 투자가 들어가더라도, 개별 퇴장방지의약품에 배정되는 자본이 적으면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인정 이익'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라며 "제조원가에 일정 수준의 영업이익을 더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올해 1월 기준 퇴장방지의약품을 취급하는 제약사 가운데 가장 많은 품목을 보유한 곳은 대한약품공업 86개, JW중외제약(001060) 64개, HK이노엔(195940) 39개 순이다. 일부 제약사들은 수익성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이유로 제한적인 품목만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하반기부터 개편안을 시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