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차세대 방사성의약품(RPT) 확보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퓨쳐켐(220100), SK바이오팜(326030) 등 국내 RPT 개발 기업들이 새로운 협력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 RPT 시장을 선도해온 스위스 노바티스를 비롯해 주요 빅파마들이 한국 바이오텍의 임상 성과를 주목하면서, 기술 도입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노바티스와 미국 일라이 릴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최근 RPT 분야에서 신규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한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RPT는 암세포에만 방사선을 내뿜어 죽이는 차세대 암 치료제다. 암세포에 결합하는 표적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여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치료 방식으로,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유사한 원리다. 전통적인 항암제보다 개발 기간이 짧고 부작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전 세계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노바티스가 이끌고 있다. 2022년 출시한 전이성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Pluvicto)'는 1년 만인 2023년 연 매출 10억달러(1조4400억원)를 돌파해 첫 RPT 블록버스터가 됐다. 지난해 매출은 3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플루빅토는 국내에서도 지난해 8월부터 처방되고 있다. 회당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 치료제인 데다 구강건조와 적혈구 감소, 빈혈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높은 효과가 입증돼 글로벌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도 RPT 기술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BMS는 방사성치료제 기업 '레이즈바이오'를 약 41억달러(6조762억원)에 인수하며 악티늄 기반 플랫폼을 확보했고, 아스트라제네카는 '퓨전 파마슈티컬스'를 최대 24억달러(3조5568억원)에 인수했다. 일라이 릴리도 '포인트 바이오파마'를 약 14억달러(2조748억원)에 사들였다.
다만 일부 파이프라인에서 최근 임상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국내 기업들의 임상 데이터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노바티스 역시 업계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RPT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과의 협업을 검토하고 있다.
RPT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내 기업으로는 퓨쳐켐이 꼽힌다. 퓨쳐켐은 전립선암 치료용 RPT 신약 '루도타다이펩(FC705)'의 국내 임상 3상, 미국 1·2a상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노바티스를 비롯한 여러 글로벌 제약사의 초청을 받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도타다이펩은 전립선-특이 세포막항원(PSMA)을 표적으로 하는 화합물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구조로, 기존 RPT 치료제와 차별화된 설계를 갖췄다. 혈액 내 단백질인 알부민과 결합해 약물이 체내에 오래 머물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퓨쳐켐은 이를 통해 질환 부위에 더 많은 약물이 축적돼, 상대적으로 적은 용량으로도 동일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퓨쳐켐의 기술 수출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유망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미팅을 진행하는 자리로, 사전 기술 검토를 거친 기업들만 초청 대상이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밖에 다른 국내 RPT 개발 기업들의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SK바이오팜은 12일 RPT 신약 후보물질 'SKL35501'과 영상진단제 'SKL35502'에 대한 임상 1상 시험계획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회사는 SK(034730)그룹의 지원을 받아 RPT 신약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전략본부장(부사장)이 신약 후보물질 도입부터 방사성 동위원소 공급 계약까지 사업 전반을 직접 챙기고 있다.
셀비온(308430)은 전립선암 RPT 신약 '포큐보타이드'와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1상 첫 투약을 이달 중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 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잠재적 파트너들과 기술이전 논의도 진행 중이다.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개발 전문 기업인 듀켐바이오(176750)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에 쓰이는 '비자밀'과 '뉴라체크'를 통해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처방에 앞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을 통해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침착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듀켐바이오의 RPT가 활용된다. 일본 에자이의 알츠하이머 신약 '레켐비'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데다, 일라이 릴리의 치매 신약 '키순라'도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어서 듀켐바이오의 성장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RPT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보고 기술 검토에 나서면서, 임상 단계에 진입한 국내 기업들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며 "향후 임상 결과에 따라 기술이전은 물론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