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치타의 눈물'이 약점이 될 수 있는 시기임은 틀림없다." -SK바이오팜 이동훈 대표이사
"이곳에 올 수 있는 회사들만 경쟁에서 살아남는 구조가 된 것 같다." -셀트리온 서진석 대표이사

12일~15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 2026)'가 열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SK바이오팜(326030) 이동훈 대표이사, 셀트리온(068270) 서진석 대표이사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두 대표를 비롯해 많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리더들은 하나같이 '인공지능(AI)'을 언급했습니다.

SK바이오팜 이동훈 대표이사 사장. /조선비즈DB

행사 기간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 창립자 젠슨 황이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한 이동훈 대표는 엔비디아와 150년 역사의 글로벌 대형 제약기업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10억달러 규모 AI 기반 신약 공동 연구' 발표를 보고 '치타의 눈물'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치타는 많은 포유류가 멸종한 빙하기에서 동종 교배를 반복하며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눈 밑의 눈물 자국 같은 유전적 형질이 남았습니다.

최근 동물학자들이 치타 개체 수를 늘리고자 미국 동물원에 모아 사육을 시도했지만, 외부 바이러스에 취약한 면역 체계 때문에 질병이 퍼져 개체 수가 급감했고, 결국 '이종 교배'로 치타의 유전적 약점을 극복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를 제약·바이오 산업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과거 실험실 중심의 폐쇄적 연구 방식이 경쟁력이었지만, 이제는 AI와 외부 기술을 결합하는 이종 교배 전략 없이는 점점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진석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대표이사 사장이 13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기업 발표를 하고 있다. /셀트리온

현장에서 만난 서진석 대표는 "제약·바이오산업의 전성기였던 2018년만해도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떠오를 만큼 화려했던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의 풍경은 사라졌다"면서 "아이디어나 가능성만으로 투자자 앞에 설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대표 모두 AI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서진석 대표는 "2년 전부터 신약 발굴 관련 조직을 중심으로 AI를 도입해 내부에서 직접 분석·모델링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고, 올해부터는 전사 시스템을 도입해 회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는 사이클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공장 자동화와 로보틱스 같은 분야도 검토 중입니다.

AI가 시험적 도구가 아니라 전사적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서 대표는 "신약 발굴팀은 글로벌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활용한 유전자 분석과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LLM(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 도입 조직을 구성했고, 공장 자동화를 맡을 팀도 구성될 예정"이라면서 "예전에는 시험적 프로젝트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멤버들이 독자적으로 데이터 분석과 AI 활용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SK바이오팜은 AI 기반 연구 혁신으로 속도와 정확성이 담보되는 경쟁력을 갖춘 'AI로 일하는 제약사(AI-driven Biopharma)'로 발전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습니다.

이동훈 대표는 "제약·바이오 산업이 동종 교배 방식을 벗고 기술 융합을 이루는 이종 교배를 과감하게 시도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방법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그는 "한 우리에 넣어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며 "전체적인 연구개발(R&D)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transformation)가 일어나야 하고, 내 것을 포기하는 결단도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AI 기반 거대 정보통신(빅테크) 기업이 제약·바이오 기업의 포식자로 변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CEO가 대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엔비디아

이번 행사에 모인 글로벌 제약·바이오 리더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격적 기술 융합과 연구개발(R&D), 조직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계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이곳 행사 현장에서 내수 시장·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중심의 사업을 해온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AI와 로봇 기술을 활용한 신약 후보 물질 발굴, 공장 자동화, 대규모 데이터 분석 등 디지털 전환의 성공이 한국 제약·바이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필수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