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라이프사이언스 부문 부사장이 12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기업 발표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산업 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 2026)'에는 AI가 뜨거운 화두였다.

행사를 주최한 투자은행(IB) JP모건의 개회사부터 글로벌 빅파마들의 기업 발표 무대 곳곳에서 AI가 핵심 키워드로 나왔다. 특히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등극한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 미국 나스닥 상장사 템퍼스AI(Tempus AI)가 큰 주목을 받으며 발표 무대에 올랐다.

전통 대형 제약사 중심의 투자 행사가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과 기업의 등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AI가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는 심장이자 제조·생산 공정을 효율화해 수익성을 키울 전략적 도구가 되고 있다.

미국 제약기업 화이자(Pfizer)의 알버트 불라 CEO는 "AI는 비용 56억 달러(약 8조 2500억 원)를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제조뿐 아니라 조직 전반에 걸쳐 AI를 활용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크리스 뵈너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AI를 확대 적용했다"며 "올해도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내기 위해 AI를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제약기업 일라이 릴리. /회사 제공

◇ "AI, 신약 R&D 중심 엔진으로"

이날 엔비디아와 일라이 릴리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AI 혁신 공동 연구소(Co-Innovation AI Lab)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는 이곳에서 5년간 10억 달러(약 1조 4600억 원)를 투자해 실험실 자동화, 제조 공정 최적화, 임상 개발 가속화 등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실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스템 베라루빈(Vera Rubin) 기반 AI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블랙웰(Blackwell)의 후속으로 이번 CES 2026에서 공개한 차세대 AI 슈퍼칩 플랫폼이다.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라이프사이언스 부문 부사장은 "일라이 릴리는 컴퓨터 기반 연구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AI 기술과 결합해 혁신적 발견을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라이프사이언스 부문 부사장이 12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기업 발표를 하고 있다.

데이비드 릭스 일라이 릴리 최고경영자(CEO)는 "우리의 방대한 데이터와 과학 지식, 엔비디아의 연산 능력과 모델 구축 전문성을 결합하면 획기적인 신약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AI가 실험 데이터를 학습해 모델을 고도화하고, 자동화된 연구 설계에 활용하는 '디지털 드라이 랩(digital dry lab)'을 구축할 계획이다.

AI가 컴퓨터상에서 가상 실험을 통해 신약 후보 물질을 선별하고 실제 실험 결과를 다시 학습해 다음 실험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자동화된 실험 장비와 로봇 시스템이 적용돼 연구 속도를 높이고, 실험 결과를 다시 모델 개선에 재활용하는 연구 자동화 구조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파월 부사장은 "플랫폼 확장은 실험 데이터, 연구 결과, AI 모델, 자동화 시스템을 하나로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의미한다"며 "AI는 단순 보조가 아니라 연구를 이끄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흑자 기업 템퍼스AI "환자 4500만명 데이터 확보"

미국 의료 AI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템퍼스AI도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회사는 2015년 설립돼 2024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처음엔 AI 기반 유전체 분석과 임상 데이터 통합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AI 진단·예측 설루션, 환자 전용 모바일 앱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현재 국내를 비롯해 세계 의료 AI 기업 상당수가 아직 적자 구조인데, 이 회사는 지난해 흑자 전환했다.

에릭 레프코프스키 템퍼스AI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발표에서 "현재 조정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를 기록하며 완전히 자생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3년간 연평균 25% 성장'을 목표로 제시했다.

레프코프스키 CEO는 종양학을 중심으로 임상 검사를 수행하고 보험 청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진단 사업,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연구용으로 제공하는 데이터 사업을 통해 수익화 구조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템퍼스AI는 4500만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를 보유한 업계 최대 수준의 멀티모달 데이터 세트(Multimodal dataset)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유전자, 영상, 임상 정보까지 결합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에 따르면 미국도 10년 전에는 연구자들이 수십 명의 데이터를 모으는 데 수년이 걸렸고 대규모로 생성된 환자 데이터가 연구에 활용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템퍼스AI는 임상 진단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비식별화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축적해 왔다.

템퍼스 AI가 12일(현지 시각)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자료 중 일부. /템퍼스AI

레프코프스키 CEO는 "지난해 데이터 매출은 3억 1600만 달러(약 4600억 원)로 전년보다 약 30% 늘었고 글로벌 상위 20대 제약사 중 19곳, 250개 이상의 바이오텍이 템퍼스AI의 데이터를 활용 중"이라고 밝혔다. 총 데이터 계약 가치(TCV)는 11억 달러(1조 6200억 원)를 넘어섰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함께 종양학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 중"이라며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를 활용해 진단과 신약 개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제레미 메릴먼(Jeremy Meilman) JP모건 헬스케어 투자은행 부문 글로벌 공동 대표는 개회사에서 "산업 전반에 AI의 변혁적인 힘이 존재한다"면서 "현재 헬스케어 테크는 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분야가 됐고, 이는 산업 구조 재편을 가속하는 핵심 동력이 돼 올해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