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게보린'으로 유명한 중견 제약사 삼진제약(005500)이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지난해 창업주 2세 조규석 사장과 최지현 사장이 각자 대표로 오른 데 이은 변화다.
9일 삼진제약에 따르면, 올해 '항암·폐동맥고혈압사업부'를 신설했다. 고부가·고난도 치료 영역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이 깔린 것이다.
회사는 핵심 수익원인 제네릭(복제약) 편중 구조를 완화할 방안을 찾는 게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제네릭 약값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40%로 낮추는 방향의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이에 제약업계 전반에 수익성 악화 위기감이 고조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구체적인 시행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2012년 일괄 약값 인하 이후에도 약가 조정이 없었던 약 가격부터 내린다. 건강보험에 등재된 기존 의약품 중 인하 대상 품목에 대해선 40%대 수준까지 3년 동안 차례대로 인하한다는 계획이다.
◇ 경영 내실 이끈 제네릭약, 가격 인하 정책에 위기
제네릭 약값이 대폭 인하 조정되면 삼진제약도 실적 성장세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삼진제약은 202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 매출 3000억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54.5% 늘어 31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증가한 228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5% 늘어 약 226억원이었다.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으나 1~3분기 실적을 보면 전년보다는 실적 성장 폭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의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항혈전제 플래리스, 뇌 기능 개선제 뉴티린, 식욕촉진제 트레스탄 등 전문의약품 대부분이 제네릭 의약품이다. 일반의약품 중에서는 소염진통제 게보린, 건강기능식품은 하루엔진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회사는 고삐를 당기고 있다. 지난해 신규 선임된 전문경영인 김상진 삼진제약 경영 총괄사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약가 인하 정책 시행이 예고돼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고 어려운 상황이 예측된다"면서 공장 가동률과 수율 개선을 통한 제조원가 구조 혁신을 주문했다.
김 대표는 "암·면역을 비롯한 전략 분야 연구개발(R&D)로 기술 이전과 공동 연구 등 다양한 사업 기회를 중장기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임직원에게 당부했다.
최근 삼진제약은 항체약물접합체(ADC)와 면역항암제 등 항암 신약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왔다. 의료기기 사업부도 신규 품목을 발굴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삼진제약은 컨슈머헬스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2019년 8월 컨슈머헬스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일반의약품과 의약외품,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이 컨슈머헬스사업에 속한다.
◇ 공동 경영 바통 이어받은 오너 2세, 성장 정체 극복 과제
삼진제약의 경영·지배 구조는 한국에서 드문 형태다. 공동 창업자 조의환 회장과 최승주 회장 두 가문이 전문경영인과 함께 50년 이상 공동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3월, 조 회장의 장남 조규석 대표와 최 회장의 장녀 최지현 대표가 각자대표로 선임되며 2세대 공동 경영 체제를 본격화했다.
조 대표는 경영관리·재무·생산 부문을, 최 대표는 영업·마케팅·연구개발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조 회장 차남 조규형 부사장, 최 회장 차녀 최지선 부사장도 조 대표와 최 대표와 함께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합류했다.
보유 지분은 조 회장과 일가가 12.85%, 최 회장 일가가 9.89%를 보유하고 있다. 외부 세력으로 분류되는 하나제약도 삼진제약 지분 8.24%를 쥔 주요 주주다.
2022년 하나제약이 삼진제약 지분 13.09%를 확보해 최대 주주에 오르면서 일각에선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2024년 하나제약이 다시 삼진제약 지분을 매각했다. 당시 하나제약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삼진제약 주식을 매입한 것이라며 경영권 개입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최근 삼진제약은 지난해 11월 일성아이에스(003120)(구 일성신약)와 약 7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했다. 2022년에는 아리바이오 지분 약 5%대, 아리바이오는 삼진제약 지분 8% 안팎을 교환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비책으로 평가했다. 자사주 처분 시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3차 상법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두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취약해질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해 자사주 맞교환으로 우호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는 회사가 들고 있을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법안 통과 전 우호 세력과 주식을 교환하면 의결권이 살아나 이를 우회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창업주 1세대와 2세대의 지분 승계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 조규석 사장 지분율이 3.06%, 최지현 사장 지분율이 2.45%이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위원은 "하반기 대대적인 약가 인하로 올해 업계의 전반적인 어려운 업황이 예상된다"며 "삼진제약은 실적의 절대적 규모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다져 위기를 대처하는 사업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