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에피스가 유통·판매 새 판을 짜고 있다. 회사는 2015년부터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제품을 여러 파트너사를 통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시장에 유통· 판매하는 '간접 판매'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최근 '직접 판매' 체제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5일 조선비즈 취재 결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판매 파트너사 오가논(Organon)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1차 실사를 마쳤고, 다음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실사 단계로, 양사의 인수 거래가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오가논 외 다른 기업 인수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다각도로 글로벌 상업화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밖으로는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데다, 안으로는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인적 분할로 경영 독립 구조를 이루고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의 핵심 자회사가 되면서 신약 개발 성과와 실적 성장 등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하는 과제에 놓여 있다. 다만 회사 측은 "오가논 인수를 검토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 "신약 개발 시동 걸렸는데…현금 창출력 키워야"
간접 판매 방식은 이미 유통망을 갖춘 파트너사를 활용하기 때문에 시장 진입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판매 이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직판의 가장 큰 장점은 수익성이다. 파트너사를 거치지 않으면 유통 수수료 부담이 줄어든다. 업계에 따르면 해외 진출 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협력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평균 매출의 30~4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직판의 이점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오가논 등 글로벌 판매망을 보유한 기업 인수를 검토하며 수지타산을 따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전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마케팅 파트너사 바이오젠(Biogen)으로부터 안과질환 치료제 '바이우비즈(Byooviz)의 유럽 상업화 권리를 반환받고, 유럽서 직접 판매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직접 판매 전환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유럽 내 직접 판매 제품은 총 4종으로 확대됐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그룹 고위 임원은 "기존 판매 대행 구조에선 수익을 나눠 갖기 때문에 인식 매출이 덜 잡힌다"며 "시장에서 자리 잡은 바이오시밀러부터 직접 판매로 전환하면 회계상 인식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파트너사를 활용하면 이미 구축된 판매망을 통해 빠른 시장 진입과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격 전략에 제약이 있고, 제품 판매 이익을 온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김수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파트너사를 활용한 판매 시스템은 판매·마케팅 비용 절감 효과는 있으나 가격 전략이 파트너사에 의해 결정되는 특성상 판가 통제 능력이 제한적이고, 자체적인 브랜드 구축 역시 어렵다"고 평가했다.
반면, 직접 판매 체제에서는 판매·마케팅 비용 관리가 중요해진다. 삼성그룹 임원은 "직접 판매 체제로 전환하면 판매·마케팅 비용 관리를 잘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부담 요인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직판 체제가 되면 영업망 유지 비용과 재고자산을 비롯한 운전 자본 부담도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비용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미국 시장은 민간 보험 중심의 복잡한 유통 구조로, 직판에 필요한 초기 비용과 인프라 부담이 크다. 이에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에서는 기존처럼 파트너사를 통한 판매 전략을 유지하는 한편, 유럽을 중심으로 직판 체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유럽은 국가 단위 입찰(텐더) 중심의 구조로 비교적 시장 진입이 수월하다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셀트리온(068270)은 삼성바이오에피스와 달리 애초에 직접 판매로 진출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직접 판매망을 운영하며 가격 전략, 입찰 대응, 브랜드 인지도 구축 등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회사가 더 공격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펼칠 수도 있다. 2024년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부문 연 매출은 3조1000억원 규모,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연 매출 1조5000억원 규모다.
특히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신약 개발을 전담하는 자회사 에피스넥스랩을 통해 신약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신약 개발 재원은 결국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 수익에서 나온다. 바이오시밀러에 이어 신약 개발 성과를 내려면 우선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더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까지 총 9개 제품을 출시했으며, 2030년까지 10개 이상의 신규 바이오시밀러를 추가 개발할 계획이다. 지난해 출시한 바이오시밀러의 뒤를 이어 나올 면역항암제 '키르투다' 바이오시밀러 등 차기 제품은 상업화까지 최소 3년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기존 승인 제품의 판매를 극대화하는 것이 실적과 향후 투자 여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신약 개발도 발을 내딛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말 첫 신약 파이프라인인 방광암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의 임상 1상 시험계획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했다. 인투셀(287840)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한 물질로, 올해 글로벌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2023년 인투셀(287840)과 최대 5종의 ADC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는 중국 프론트라인과 ADC 후보물질 2종의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최근에는 서울대·프로티나(468530)와 협력해 2027년까지 10개의 항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기로 하며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 약가 인하 정책 기회,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 경쟁 치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판매 체제 전환은 최근 급변하고 있는 세계 시장 환경 대응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의약품 가격을 다른 주요 선진국에서 적용되는 최저 수준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 약값 인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오리지널 약을 보유한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는 수익성 저하 부담이 크다. 반면, 바이오시밀러 기업엔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자 오리지널 약보다 가격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를 장려할 것이란 기대가 깔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약값을 낮추고자 보험사, 제약사, 약국을 연결하는 PBM(처방 급여 관리 업체) 개혁도 추진 중이다. 리베이트 축소∙폐지, 고정 수수료제 도입 등을 통해 PBM의 오리지널 의약품 선호도를 약화하고 가격 중심 경쟁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약품청(EMA), 미국식품의약국(FDA) 등은 바이오시밀러 개발 부담을 낮춰주고자, 비교 임상 면제를 검토해 진입 장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허가 제도도 변경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업으로선 개발비 절감과 개발 기간 단축을 통해 사업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스위스 산도즈(Sandoz), 미국 화이자(Pfizer), 미국 암젠(Amgen), 한국 셀트리온(068270)과 삼성바이오에피스, 인도 바이오콘(Biocon), 미국 바이오젠(Biogen)을 포함한 상위 8개 기업이 매출 기준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과점 구조다.
상위권 그룹의 시장 점유율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진입하는 후발주자도 늘고 있다.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 영향으로 오히려 기업들의 경쟁 강도가 더 세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오시밀러는 출시 이후 후속 제품이 늘면서 경쟁 심화로 인해 가격이 구조적으로 하락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이 바이오시밀러 시장 상위권에 있는 한국 바이오시밀러 기업에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인도, 중국 기업들의 미국 바이오시밀러 허가 신청이 늘고 있어 경쟁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우려도 상존해 있다"고 말했다.
인도와 중국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와 저가 공세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질적·양적 경쟁 모두 심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리지널 약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분쟁 리스크(위험) 변수도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5월 FDA로부터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오퓨비즈'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오리지널 제약사인 리제네론이 제기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가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관련 항소심에서 올해 초 패소해 현재까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 대상 기업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외에도 산도즈, 암젠, 마일란, 셀트리온 등이 포함됐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사 중 유일하게 소송에서 이긴 암젠만 2023년 11월부터 제품을 미국에서 판매 중이다. 리제네론과 합의를 이룬 마일란, 산도스 등은 올해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고, 셀트리온도 올해 말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김수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만큼, 퍼스트 무버(최초 출시) 지위 확보와 기업별 포트폴리오(제품군) 구성, 시장 접근 전략과 판매망 확보, 비용 구조 관리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