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모습. /뉴스1

바이오 업계에는 이른바 'LG 사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LG화학(051910) 출신들이 곳곳에 포진했기 때문인데요. LG화학은 한때 신약 개발 명가(名家)로 불렸고 많은 인재들이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도 모두 LG화학 출신인데요. LG화학에서 성장한 인력이 다른 회사에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LG화학의 인재 배출은 국내 바이오 산업 전반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 기업에서 축적된 연구개발 경험과 노하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생태계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다만 다른 한편에선 LG화학이 핵심 인력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재 유출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됩니다. 특히 신약 개발처럼 장기 개발 등 연속성이 중요한 분야에서 인력 이탈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평가가 엇갈립니다.

LG화학 신약 개발의 역사는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LG화학은 1961년 의약품 제조업 허가를 획득하고 1979년 충남 대덕연구단지에 LG바이오텍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1984년 의약품 사업부를 만들고 1996년 B형 간염 백신 유박스비로 세계보건기구(WHO) 사전 적격 인증(PQ)을 국내 최초로 받았는데요. 국제 기구 조달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품목 허가를 받은 것입니다.

LG화학은 2002년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제약·바이오 사업을 LG생명과학으로 분사했습니다. 이듬해인 2003년 항생제 팩티브가 국산 신약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2012년에는 국산 첫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를 선보였습니다. LG화학은 그러나 2017년 LG생명과학과 15년 만에 다시 합병됐습니다. 당시 LG생명과학이 신약 개발에 주력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했고 현금 유동성이 있는 LG화학과 합병하면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다는 해석이 업계에서 나왔는데요.

(왼쪽부터) 조봉준 SK바이오사이언스 부사장과 홍성원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 /각 사 제공

이 과정에서 동고동락한 LG화학 출신들은 회사를 나와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최근 SK바이오사이언스 원액생산실장으로 영입된 조봉준 부사장은 LG화학에서 약 20년 근무했는데요. 건국대 미생물공학 학사, 성균관대 분자미생물학 석사를 졸업하고 LG화학에서 바이오의약품 원액을 생산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원액은 치료제 핵심 성분이 됩니다. 그만큼 생산 품질과 안전성이 중요하죠.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을 포함한 바이오의약품 원액 생산 안전성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요.

홍성원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도 LG화학 출신입니다. 서울대 약학 학사와 석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약학 박사를 지내고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을 거쳐 2019년 LG화학에 입사했습니다. LG화학 신약연구센터장과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장 등을 지내고 삼성바이오에피스에 2023년 합류했는데요. 홍 부사장은 에피스넥스랩 대표와 삼성에피스홀딩스 기타 비상무이사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에서 인적 분할한 삼성에피스홀딩스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에피스넥스랩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데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고 상업화합니다. 에피스넥스랩은 아미노산 결합체(펩타이드) 분야 등 바이오 기술 플랫폼 개발을 추진합니다. LG화학 출신이 삼성에서 바이오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리온(271560)이 인수한 리가켐바이오(141080)사이언스 김용주 대표도 LG화학 출신입니다. 김 대표는 1983년 LG화학 기술연구원에 입사했는데요.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소장,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 신약연구소장 등을 거쳐 2006년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 약물 접합체(ADC)를 개발하는 기업인데요.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 암세포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일반 세포에 미치는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극대화해 핵심 항암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리가켐바이오는 오는 2027년까지 ADC 신약 후보 물질 20개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요.

그밖에 알테오젠(196170) 박순재 대표도 LG생명과학 상무를 지냈습니다. 2008년 설립된 알테오젠은 항암제를 정맥(靜脈) 주사에서 피하(皮下) 주사 제형으로 바꿔주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제약사 머크의 항암제 키트루다에 알테오젠의 기술이 적용됐는데요. 피하 주사는 환자가 집에서 1~2분 만에 투여할 수 있어 편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알테오젠은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업계는 인력 쟁탈전이 치열한 곳입니다. 인력은 확보하는 것 만큼 지키는 것도 중요한데요. 바이오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력이 이탈하는 것은 그만큼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현재 LG화학에서 나간 인재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도 다른 기업에서 제각각 성과를 내고 있는데요. LG화학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러나 LG화학 역시 한미약품 부사장 출신 손지웅 생명과학사업본부장(사장)을 영입하는 등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편 LG화학은 2023년 미국 항암 신약 기업 아베오를 인수했는데요. 최근에는 10조원 규모의 미국 신장암 치료제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아베오에서 신약 물질을 도입하며 새로운 신장암 치료법 개발에 나선 것입니다. LG화학은 그밖에 ADC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요. 회사 관계자는 "ADC는 유망한 항암 분야기 때문에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초기 연구하는 단계"라고 했습니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이 34조7350억원입니다. 이 가운데 생명과학 부문은 전체 매출의 약 3% 수준입니다. 매출 비중은 비교적 적어도 바이오 기업인들을 배출하며 사관학교로 불리는 LG화학. 이 회사 출신들을 업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