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항체-약물접합체(ADC)'로 불리는 항체-분해약물 접합체(DAC) 개발사 오름테라퓨틱(475830)이 현금을 충분히 보유한 상황에서도 추가 투자 유치에 나섰다. 단순한 운영자금 확보라기보다는 파이프라인 확장과 기술 도입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오름테라퓨틱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18일 145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CPS) 투자를 유치했다. CPS는 일반 우선주처럼 투자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기업 가치가 상승할 경우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투자 라운드는 KB인베스트먼트가 주도했으며, IMM인베스트먼트, 우리벤처파트너스, 스타셋인베스트먼트 등 기존 투자자들이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 신규 투자자로는 미국 보스턴 기반 글로벌 자산운용사 와이스자산운용을 비롯해 한국투자파트너스, DSC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에이온인베스트먼트, 데일리파트너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오름테라퓨틱의 재무 상황이다. 회사는 현재 약 15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이미 체결된 기술이전 계약에 따른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수익도 예정돼 있다. 그럼에도 추가 증자를 단행한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파이프라인 확장 국면에 들어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오름테라퓨틱은 2016년 대전에 설립돼 올해 2월 상장한 DAC 전문 기업이다. 2019년 미국 보스턴에 연구소를 설립해 이원화된 연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항체 연구·개발은 대전 본사에서, ADC 및 화학 분야 연구는 보스턴 연구소에서 진행한다. 임상시험 역시 미국에서 수행하고 있다.

DAC는 ADC와 표적단백질분해제(TPD)를 결합한 기술로, 항체에 세포 독성 약물 대신 TPD를 결합해 암세포 안의 특정 단백질만 제거하는 방식이다. ADC가 암세포를 통째로 공격하는 '유도미사일'이라면, DAC는 암세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핵심 단백질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에 가깝다.

기존 ADC는 강력한 효능을 지녔지만, 특정 단백질만 정밀하게 제거하기 어렵다는 한계로 인해 내성이나 독성 문제가 지적돼 왔다.

반면 TPD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장점이 있지만, 저분자 화합물이 전신으로 퍼지면서 정상 조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DAC는 항체를 이용해 암세포에만 TPD를 전달함으로써, 두 기술의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접근이다.

오름테라퓨틱은 이미 여러 차례 대형 기술이전 성과를 냈다. 2023년에는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을 약 2442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했다. 당시 약 1350억원의 선급금을 수령했으며, 임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향후 1~2년 내 추가 마일스톤 수익도 기대된다. 오는 2026년에는 임상 1상 종료에 따른 403억원의 기술료 수령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과 TPD 플랫폼 기술에 대한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최대 1조3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약 4180억원 규모의 계약이 이미 확정됐다. 2026년 첫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진입과 두 번째 후보물질 개발에 따라 약 300억원의 추가 마일스톤도 예정돼 있다. 버텍스는 해당 기술을 활용해 골수 환경을 정비하는 전처치제 후보물질을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오름테라퓨틱은 급성골수성백혈병 후보물질 'ORM-1153'과 소세포폐암 후보물질 'ORM-1023'을 개발 중이다. ORM-1153은 세포 생존에 필수적인 단백질 GSPT1을 분해하는 DAC다. 2개 물질 모두 내년 전임상을 마친 뒤 기술이전을 추진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이번 투자금을 이들 핵심 물질을 포함한 기존 후보물질 개발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GSPT1 외 신규 페이로드 개발 등 DAC 플랫폼 고도화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선택성과 효능을 고려한 페이로드 설계를 기반으로 연구개발(R&D)뿐 아니라 운영 인프라까지 함께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자금 여력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투자를 유치한 배경으로 외부 기술 도입이나 추가 파이프라인 확보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번 투자 라운드에 참여한 한 투자사 관계자는 "DAC 기술이 초기 검증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확장 국면에 들어선 만큼, 향후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성격의 투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름테라퓨틱은 기술 도입 가능성도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이승주 대표는 항체나 페이로드 등 핵심 기술을 외부에서 도입해 파이프라인을 넓히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현금을 충분히 보유한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해, 기술이전이나 기술 도입 협상에서 재무적 유연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변수도 존재한다. 지난 4월 DAC 후보물질 'ORM-5029'의 유방암 대상 임상 1상에서 환자 1명이 이상반응을 보이며 자진 철회한 이후,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임상 재개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해당 이슈의 향방은 향후 회사의 기술 신뢰도와 파이프라인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