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 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가 12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강당에서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안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허지윤 기자

특허가 만료한 신약과 동일한 성분과 함량으로 개발한 제네릭(복제약)의 약가(藥價) 산정률을 두고 정부와 제약 바이오 업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약가 개편안에 대해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며 전면 재검토와 시행 유예를 촉구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는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53.55%에서 40%대 수준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약가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약가'는 일반 소비자가 약국에서 지불하는 판매 가격이 아니라, 건강보험이 병원·약국에 지급하는 상한 금액(보험 약가)을 뜻한다. 예를 들어 오리지널 약의 보험 약가가 1만원인 경우, 기존에는 제네릭 약가를 대략 5300원까지 인정했지만 앞으로는 4000원대 수준에서 상한 금액이 정해지게 된다.

제네릭 약가가 높은 탓에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보다 제네릭 판매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최근 5년간 건강보험에 등재된 신약 240종 중에서 국내 개발 신약은 13종(5.4%)에 그친다.

반면, 제약업계는 "개편안이 강행될 경우 연간 3조 6000억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과 대규모 실직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 "연간 3.6조원 매출 타격…실직·R&D 동력 상실" 우려

비대위는 이번 개편안으로 인해 복제약 산정 비율이 현행 53.55%에서 40%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산업계가 입을 피해 규모를 연간 최대 3조 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올해 전체 약품비(26.8조원) 중 제네릭 비중(53%)에 인하율(25.3%)을 적용해 산출한 정량적 수치라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상위 100대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이 4.8%에 불과한 상황에서 조 단위의 매출 손실은 산업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며 "기업 수익이 1% 감소할 때 R&D 활동은 1.5% 감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산 신약 개발과 기술 수출로 이어온 성장 동력이 완전히 상실될 위기"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약가 개편안의 영향으로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대위는 매출 감소액 3조6000억원을 제약산업 고용유발계수(4.11명/10억원)에 대입할 경우, 약 1만 4800명의 실직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대위는 "전국 17개 시도에 분포한 653개 생산시설과 200여 개 연구시설의 인력 감축은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 제약업계는 정규직 비중이 94.7%로 전 산업 평균(61.8%)을 크게 웃돈다.

◇ "한국 약가 이미 최저…필수약 품절 초래 우려"

한국의 약가가 이미 다른 국가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비대위는 물가 수준을 고려한 '라스파이레스(Laspeyres) 가격지수' 분석 결과, 한국의 항생제 가격을 1로 보았을 때 미국은 3.34배, 독일은 1.81배, 스위스는 1.64배 등으로 선진국 대비 매우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1999년 이후 10여 차례 약가 인하가 반복되면서 글로벌 경쟁지수는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다"며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11년 11위(1.7%)에서 2024년 13위(1.3%)로 하락한 것은 중복·반복적 약가 인하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공급 중단·부족 275개 품목 중 38.6%인 106개 품목이 채산성 부족이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항생제, 분만유도제, 신생아 호흡곤란 치료제 등 필수의약품의 품절 사태가 빈번해질 것"이라며 "2024년 기준 31.4%에 불과한 원료의약품 자급률 역시 저가 해외 원료 의존도가 높아지며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대위는 정부에 ▲개편안 시행의 일정 기간 유예와 산업계 공동 영향 분석, ▲산업 현장의 실질적 영향을 고려한 정책 재설계 ▲향후 약가제도 수립 과정에서 산업계 의견 수렴을 위한 공식 의사결정 거버넌스 마련을 요구했다.

비대위는 "정부는 일방적인 추진보다 산업계와의 충분한 협의를 전제로 국민 보건과 산업 성장, 건강보험 재정 간의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