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기업 HLB(028300)가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 허가를 내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할 계획입니다. 벌써 세 번째 도전인데요. 리보세라닙은 그동안 신약 허가를 두 번 신청했으나 미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리보세라닙이 신청을 거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보세라닙이 미국에 처음 도전한 것은 2023년 5월입니다. 당시 리보세라닙은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과 병용하는 요법으로 FDA에 신청했는데요. 캄렐리주맙은 항암제의 일종인 면역 관문 억제제입니다.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위장하는데 필요한 면역 관문과 결합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시 면역 세포의 공격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FDA에서 보완 요구를 받으면서 도전은 불발됐습니다. 보완 요구는 신약 허가를 반려하면서 승인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절차인데요. 당시 리보세라닙의 약효나 안전성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캄렐리주맙 공장 설비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는데요.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은 이후 FDA에 재도전했으나 올해 3월 보완 요구를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제는 캄렐리주맙의 제조 공정이었는데요. 회사 측은 "제조 공정 문제가 멸균·살균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리보세라닙은 문제가 없어도 캄렐리주맙과 함께 쓰는 요법으로 허가를 신청했기 때문에 단독으로 승인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미중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는데요.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캄렐리주맙은 중국에서 연매출 1조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약입니다.
다만 HLB 측은 미중 갈등과 FDA 결정은 관련 없다는 입장인데요. 회사가 내년 초 신약 허가를 신청하면 FDA 심사는 2~6개월이 걸릴 전망입니다.
HLB가 세 번째 신청을 불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의약품 시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올해 1253조원에서 2032년 2169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시장이 큰 만큼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도전하는 기업은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HK이노엔(195940)이 대표적인데요. 회사는 이르면 연말 3세대 위장약 케이캡 허가를 FDA에 신청할 계획입니다.
케이캡은 2019년 선보인 국내 30호 신약입니다. 기존 위장약은 투약하고 30분이 지나야 효과가 있었고 밤에 자다가 속이 쓰린 경우가 있었는데요. 케이캡은 위산 분비를 억제해 이런 증상을 개선하고 약효가 빠르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미국 파트너사 세벨라와 FDA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미국에서 케이캡의 경쟁 제품은 일본 다케다제약의 보퀘즈나가 꼽히는데요. 보퀘즈나는 미국에서 2032년까지 특허 독점권이 있고 복제약은 FDA 신청이 어렵습니다. 케이캡이 그때까지 미국 시장에 안착한다면 보퀘즈나와 경쟁할 여력이 생기는 셈이죠. 증권업계는 미국에서 케이캡 매출이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의료 인공지능(AI) 기업도 미국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루닛(328130)은 유방암이 5년 안에 발생할 가능성을 AI로 예측하는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로 최근 FDA에 시판 전 허가를 신청했습니다. 이는 의료기기를 미국에 출시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절차인데요. 새로 출시할 의료기기가 기존에 시장에 나온 제품만큼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 입증하는 것입니다. 루닛은 내년 FDA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FDA에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신청한다고 100% 허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그럼에도 미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업계 관계자는 "일단 까다로운 FDA 심사를 통과하면 다른 국가에 진출할 때도 이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도전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요. 미국 시장을 두드리는 국내 기업에 문이 열릴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