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2 단백질이 과도하게 발현돼 생기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은 전체 전이성 유방암의 15~20%를 차지하는 비교적 공격적인 유형이다.
HER2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가 등장하며 생존율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첫 치료(1차 치료) 시작 뒤 평균 2년 안에 병이 다시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10년 넘게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은 THP 요법(탁산·트라스트주맙·퍼투주맙 병용) 역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Enhertu·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가 글로벌 임상 3상에서 THP 요법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면서 주목받고 있다.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조사기관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HER2 양성 표적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30년 134억달러(약 18조78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1차 치료 새 기준? 엔허투 병용법, '표준' THP 넘었다
해당 임상('DESTINY-Breast09′)은 이전에 수술 전·후 보조요법을 받은 뒤 최소 6개월 이상 재발이 없었던 전 세계 HER2 양성 진행성·전이성 유방암 환자 115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환자들은 ▲엔허투 단독요법 ▲엔허투+퍼투주맙 병용요법(T-DXd+P), ▲THP 요법 등 세 군으로 무작위 배정됐다. 전이된 뒤 내분비 요법을 받은 환자도 포함됐다.
핵심 평가 항목은 병이 악화되지 않고 유지되는 기간, 즉 무진행생존기간(PFS)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엔허투 투약 중 부작용이 발생하면 트라스트주맙으로 바꿔 치료를 이어가도록 했고, 일정 시점 이후에는 내분비 요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회의(ASCO 2025)'에서 먼저 공개된 중간분석에서 엔허투+퍼투주맙 병용요법은 PFS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결과를 보였다. 엔허투 병용군의 PFS 중앙값은 40.7개월, THP 비교군은 26.9개월이었다. 엔허투 병용군이 병이 진행되지 않는 기간을 약 14개월 이상 더 늘려준 셈이다.
무진행생존율에서도 차이는 뚜렷했다. 엔허투 병용군의 6개월∙12개월∙18개월 무진행 생존율은 각각 93.0%, 85.9%, 70.1%였다. THP 비교군은 87.8%, 72.4%, 52.1%였다.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 역시 엔허투 병용군이 THP 비교군보다 44% 낮았다. 항암 치료 후 종양의 크기가 사전에 정한 기준만큼 감소한 환자들의 비율을 말하는 객관적반응률(ORR)과 종양이 완전히 소실돼 통상 완치로 해석되는 완전반응률(CR)도 각각 85.1%, 15.1%로, THP 비교군(78.6%, 8.5%)보다 높았다. 반응이 유지된 기간(DoR)의 중앙값 역시 엔허투 병용군이 39.2개월로, THP군(26.4개월)보다 1년 이상 길었다.
지난 6일(현지 시각) '유럽종양학회 아시아(ESMO Asia 2025)'에서 공개된 아시아 환자 하위분석 결과도 큰 틀에서 동일했다.
엔허투 병용군(174명)과 THP 비교군(172명)을 비교했을 때, PFS 중앙값은 각각 40.7개월과 27.4개월로 나타났다. 24개월 무진행생존율도 73.7%와 52.8%로 전체 환자군 데이터와 유사했다. 엔허투 병용군의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은 THP 비교군보다 45% 더 낮았다.
ORR과 CR도 엔허투 병용군은 각각 89.7%, 17.8%를 기록한 반면, THP 비교군은 84.3%, 12.8%에 그쳤다. DoR 중앙값 역시 엔허투 병용군이 39.2개월로 THP 비교군의 26.3개월보다 1년 이상 길었다.
◇효과는 확인…그러나 "'모든 환자에게 1차 치료'는 일러"
박경화 고려대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이러한 결과가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채우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THP 요법은 지난 10년간 1차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아 건강보험도 적용되고 있고, 덕분에 전체 생존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며 "그럼에도 약 25% 환자에서 발생하는 뇌 전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PIK3CA 변이'처럼 내성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는 경우에는 변이가 없는 환자보다 PFS가 짧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이번 임상에는 뇌 전이가 있는 환자 약 10%와 PIK3CA 변이 환자도 포함됐는데, 모두 THP 요법 대비 일관되게 우월한 효과가 나타났다. 특수 환자군에서 분명한 치료 이점을 확인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뇌 전이 환자에서도 개선된 결과가 나온 이유로는 엔허투의 약물적 특성을 예상했다. 그는 "엔허투의 페이로드(payload·세포 독성을 갖는 항암 물질)인 엑사테칸(Exatecan) 유도체는 확산 능력이 매우 좋아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ADC 계열 항암제인 'T-DM1′ 역시 뇌 전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지만, T-DM1의 페이로드인 엠탄신(Emtansine)보다 엑사테칸의 확산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무조건적인 기대는 경계했다. 박 교수는 "모든 환자에게 엔허투 병용법이 1차 치료로 적합하진 않을 수 있다"며 "HER2 양성이면서 호르몬 수용체도 양성(HR+)인 환자는 THP 요법을 먼저 고려할 수 있다. THP 요법과 화이자의 CDK4/6 억제제인 '입랜스(성분명 팔보시클립)'를 결합하는 방법으로도 장기간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성배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도 "지난 15년 동안 1차 치료에서 THP 요법을 능가하는 요법은 없었다"며 "이번 임상에서 엔허투 병용법이 우월성을 보인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도 "THP 요법이 여전히 효과가 좋기도 하고, 엔허투는 10% 내외 환자에서 간질성 폐질환(ILD)이 발생할 수 있다"며 "따라서 엔허투 병용법이 1차 치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계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례로 엔허투를 퍼투주맙과 병용해 사용한 뒤, THP 요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거는 아직 없다"며 "이론적으로는 '더 강한 치료에 실패하면 더 약한 치료에는 반응하지 않는다'고 예측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여러 전략을 시도하며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