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이나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문제가 되는 식품을 먹은 연인과 키스하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겪는 치명적인 알레르기를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항체 치료제가 있지만 약값이 비싸고 자주 투여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백신은 2번 접종으로 1년 이상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로랑 레베르(Laurent Reber) 박사 연구진은 "면역글로불린 E(IgE) 항체를 표적으로 하는 백신이 생쥐에서 52주 동안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를 예방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지난 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했다.
◇약을 독으로 바꾸는 항체 차단
연구진은 생쥐의 유전자를 변형해 사람처럼 특정 물질이 들어오면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도록 했다. 생쥐에 백신을 2회 접종해 IgE 항체에 결합하는 또 다른 항체를 몸에서 만들도록 했다. 실험 결과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투여해도 경증 알레르기만 생겼지 생명에는 문제가 없었다.
반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생쥐는 9마리 중 8마리가 같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노출된 지 30분 안에 죽었다. 백신 접중 후 혈중 항체 농도는 52주간 유지돼 예방 효과를 보였다.
원래 IgE 항체는 면역 반응에 관여한다. 병원체나 이물질이 몸 안에 들어오면 IgE 항체가 비만세포나 호염구 같은 면역세포에 결합해 침입 경보를 전한다. 비만세포는 히스타민을 분비해 면역 체계를 깨운다. 그러면 혈관이 확장되고 피가 몰리면서 면역세포들이 총출동한다.
하지만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면역 반응이 과도해지면 혀와 목이 부어 숨이 막히고 혈관 확장으로 혈압이 떨어져 치명적인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하는 것이다.
프랑스 연구진은 IgE 항체의 단백질 조각 3개를 CRM197이라는 운반 단백질에 결합해 아나필락시스를 차단하는 IgE 키노이드(kinoid) 접합 백신을 개발했다. 이 백신을 접종하면 면역 체계가 IgE를 외부 침입자로 미리 학습한다. 나중에 IgE 항체가 나타나면 바로 다른 항체들이 달라붙어 면역세포와 결합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면역세포의 히스타민 분비가 차단되고 중증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백신은 미국 제넨테크와 스위스 노바티스가 개발한 알레르기 치료제인 졸레어(성분명 오말리주맙)와 같은 원리이다. 졸레어는 IgE와 결합하는 항체 치료제이다. 하지만 약이 워낙 고가인 데다 효과가 일시적이라 자주 투여해야 한다.
이번에 개발한 백신은 몸이 스스로 졸레어와 같은 효과를 내는 항체를 계속 생산하도록 하는 방식이라 그런 문제가 없다. 아드레날린 주사제인 에피펜(EpiPen)도 근육을 이완시키고 혈관을 수축해 알레르기 쇼크를 막을 수 있지만 근본 치료제는 아니다.
◇기생충 막는 정상 면역 반응은 유지
IgE는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기생충 같은 다른 병원체도 막는다. 만약 백신이 IgE의 정상 작용까지 차단하면 몸에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 다행히 백신은 항체의 정상 면역 반응은 막지 않았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에서 백신이 IgE 항체의 기생충 퇴치는 막지 않았다고 밝혔다.
레베르 박사는 "앞으로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통해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 지속 기간을 평가해야 한다"며 "상용화된다면 오말리주맙 같은 항IgE 단일클론 항체보다 훨씬 적은 주사 횟수로도 치료가 가능해 중증 알레르기 환자에게 비용 효율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캐나다 맥매스터대의 조슈아 쾨니그(Joshua Koenig) 교수 연구진도 이날 같은 저널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부작용 없이 아나필락시스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이점 덕분에 IgE 키노이드 백신은 매우 매력적인 치료 후보 물질"이라며 "이번에 개발한 백신이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이 성공하면 엄청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항lgE 항체 치료제인 졸레어는 2003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천식 치료제로 승인을 받고, 계속 적응증을 확대했다. 천식 외에 두드러기, 부비동염 등 다양한 알레르기 질환 치료에 쓰여 지난해 전 세계에서 6조5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졸레어는 지난 10월과 11월 각각 유럽과 미국 특허가 만료되면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개발 붐도 일었다. 국내 셀트리온은 졸레어의 첫 바이오시밀러인 옴리클로를 개발해 유럽과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s0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