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옥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 1상 시험계획(IND)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 삼성이 2022년 바이오 사업을 미래 주력 산업으로 선언한 지 약 3년 만이다. 이른바 '삼성표 신약개발'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방광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ADC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 1상 IND를 FDA에 신청했다. 회사는 내년 글로벌 임상 1상 진입과 중간결과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암세포 유도미사일'로 불리는 ADC는 정상세포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차세대 항암 기술이다.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와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페이로드), 이 둘을 연결하는 링커가 핵심으로, 항체가 암세포 표면 항원에 결합하면 약물이 세포 내부로 전달돼 정밀하게 암을 사멸시킨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후보물질 확보에 나서면서 ADC는 항암제 시장의 핵심 경쟁지로 떠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1년 11월 미국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본사를 찾아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과 만난 모습. /삼성전자 제공

업계에서는 삼성이 공들여온 신약개발 노력이 마침내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2022년 말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뒤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잇따라 회동했고, 미국 모더나 공동설립자인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미국 바이오전문 VC) 회장과도 수차례 만나 조언을 구하며 신약개발 전략을 직접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2021년 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벤처투자가 공동 출자해 1500억원 규모의 '삼성라이프사이언스펀드'를 조성해 유망 바이오 기술 발굴에도 속도를 내왔다. 지금까지 투자한 국내외 기업 11곳 중 3곳이 ADC 기업이다. 2023년 첫 국내 투자 대상도 FGFR3 표적 ADC를 개발하는 에임드바이오였다.

그래픽=정서희

삼성의 신약개발 드라이브는 최근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인적분할을 통해 본격화됐다.

삼성은 두 사업을 분리해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를 출범시켰으며, 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중심에서 신약 개발 중심의 체제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13년간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집중해온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앞으로 ADC 기반 항암제와 유전자 치료제 등 신약 개발에 나설 전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그동안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앞세워 ADC 역량 확보에 적극 나서왔다. 2023년 12월 인투셀(287840)과 최대 5종의 ADC 후보물질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삼성의 첫 ADC 신약 후보물질에 인투셀의 링커가 적용됐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올해는 중국 프론트라인바이오파마와 ADC 후보 2종 공동개발에 나섰고, 최근에는 서울대·프로티나(468530)와 함께 국책과제에 선정돼 2027년까지 항체 신약 후보물질 10개를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삼성에피스홀딩스 내 또다른 자회사인 에피스넥스랩과의 시너지 역시 기대된다. 10명 내외의 소규모 조직이지만 ADC·펩타이드 기반 플랫폼 기술에 특화돼 있으며, 확보한 플랫폼은 향후 신약 개발은 물론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연구, 기술수출까지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임상·허가·상업화 등 개발 전주기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맡아 그룹 내부에 신약 밸류체인이 완성될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신약개발과 함께 바이오시밀러 후보물질군도 확장한다. 2030년까지 10개 이상의 신규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목표로 키트루다, 엔허투 등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달러 이상 대형 의약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신설 자회사를 통해 미래 성장을 이끌 차세대 기술 기반의 유망 신사업을 적극 발굴할 계획"이라며 "확장성 높은 요소 기술을 플랫폼화해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개발도 추진하는 바이오텍 모델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