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타이드 기반 바이오 기업 케어젠(214370)이 1일 습성황반변성(Wet AMD) 치료제 후보물질 'CG-P5'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1상 결과를 공시한다. 결과 공개가 당초 계획보다 약 1년 늦어지면서 회사 역량을 둘러싼 시장의 의구심이 커진 가운데, CG-P5가 표준 치료제 '아일리아(Eylea)' 대비 열등하지 않거나 우월하다는 게 입증될지 주목된다. CG-P5는 케어진의 첫 안질환 파이프라인으로, 이번 결과는 회사의 신뢰 회복과 향후 자금 조달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용지 케어젠 대표./케어젠

케어젠은 지난달 26일 "미국 추수감사절 휴무로 CG-P5 임상 1상 최종결과보고서(CSR) 수령일이 28일(현지 시각)로 확정됐다"며 "한국 시각으로 29일 자료를 수령하고 내부 검토 후 12월 1일 지체 없이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CG-P5 임상 1상은 2023년 7월 미국 내 6개 기관에서 시작됐다. 종료 예정일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으나, 환자 모집 난항과 판독 절차 지연 등으로 올해 6월 30일, 10월 31일, 11월 30일로 세 차례 연기됐다. 케어젠 관계자는 "피험자 전원이 아일리아 주사를 장기간 맞아온 중증 환자들이어서, 플라시보 가능성이 있는 점안액 투여군 모집도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정 변경이 이어지면서 주가는 최근 약세를 보였다. 케어젠 주가는 지난달 25일 8만3200원에서 27일 장중 7만2000원까지 떨어지며 사흘 만에 13% 이상 급락했다. 다만 28일 회사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경구형 GLP-1 계열 체중감량제 후보의 임상 결과가 발표되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3.13% 급등한 8만7300원으로 반등했다.

'CG-P5' 임상 1상 최종결과보고서(CSR) 수령 관련 회사가 주주들에게 보낸 안내문./케어젠

◇"점안제 'CG-P5′, 기존 주사제 '아일리아'와 효능 유사"

황반변성은 망막 중심부의 황반에 이상이 생겨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으로, 고령 인구 증가와 함께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 학술지 '랜싯 글로벌 헬스'에 따르면, 전 세계 나이관련황반변성(AMD) 환자는 2040년 약 2억88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습성 AMD는 시력을 급속히 잃을 수 있어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현재 습성 AMD 표준치료는 항-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항-VEGF) 주사이며, 미국 리제네론의 '아일리아'를 기반으로 한 T&E(Treat-and-Extend, 치료-간격조절) 요법이 널리 쓰인다. 초기 집중 투여 후 환자 상태에 따라 주사 간격을 늘려 병원 방문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CG-P5는 아일리아를 대조군으로 삼아 1상을 설계했다. 통상 1상에서는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만 확인하는데, 상업화 경쟁 약물을 직접 대조해 유효성까지 탐색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케어젠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임상시험승인신청서(IND) 제출을 앞두고 FDA와 미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전성 관련 추가 검증 요구가 많았다. 전임상 기간이 길어 축적된 데이터가 방대했기 때문"이라며 "전례 없는 점안 제형인 만큼 조기 유효성까지 함께 확인할 것을 권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CG-P5는 케어젠의 펩타이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VEGFR-2(혈관 내피 성장인자 수용체) 선택적 결합 물질로, 맥락막 신생혈관(CNV) 생성을 억제한다. 점안액 형태로 개발 중이며, 아일리아 주사 치료와 병행 시 투여 횟수와 치료 기간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회사는 올해 1월 전체 45명 중 24명(약 53%)을 분석한 중간 결과를 공개하며 "시력 개선과 중심망막두께(CRT)에서 CG-P5와 아일리아 간 큰 차이는 없었다. 이는 두 약물의 효과가 유사하다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최종 결과도 중간 분석과 유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 네스터'에 따르면, 전 세계 AMD 치료제 시장 규모는 올해 116억달러(약 17조원)에서 연평균 7.5% 성장해 2035년 240억달러(약 34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가 약 80%를 차지한다. 김한진 라이트우드파트너스 연구원은 "황반변성 초기에는 바둑판이 살짝 휘어진 정도만 보여 주사 치료 수요가 크지 않아, 점안제 형태인 CG-P5의 시장 침투율 상승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코스메틱→헬스케어 무게추 옮기는 케어젠…공시 불신은 변수

케어젠은 2001년 설립 이후 펩타이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화장품 원료,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신약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매출은 대부분 필러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필러가 속한 전문테라피 사업부는 매출 535억원을 기록하며 전체 매출의 64.8%를 차지했다. 건기식 사업부는 126억으로 15.32%였다.

내년부터는 헬스케어 사업으로 무게추를 옮길 계획이다. 건기식 사업에서 발생하는 매출로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CG-P5의 경우 1상 결과를 기반으로 다국가 임상 2상을 설계하고, FDA 혁신 신약(Breakthrough Therapy)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건성 황반변성 등으로의 적응증 확대와, 내년 말 기술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일본, 중국 및 유럽, 북미 지역 제약사들과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G-P5 1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와 품목허가 승인까지 순항할 경우 향후 케어젠은 기존 주사제 주도 시장에 진입하며 매출과 수익성 개선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826억원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63억원으로 10.1% 감소했다. 감소 요인은 연구개발(R&D) 및 마케팅 비용 증가다.

단, 주주 신뢰 회복은 과제다. 케어젠은 과거 불성실공시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공급계약 해지 및 공급금액 변경 등을 이유로 2019년 1차례, 2020년 1차례, 2021년 2차례, 2022년 2차례, 2023년 3차례, 2024년 2차례 등 총 11차례 한국거래소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심사대에 올랐다.

문제가 된 건 2015년 코스닥 상장 직후인 2016~2017년 체결한 논바인딩(non-binding) 계약들이었다. 논바인딩 계약은 명목상 계약 규모가 1조원을 넘더라도 실제 매출은 고객사 발주량에 따라 확정된다. 고객사가 주문하지 않으면 계약 규모는 0원이 될 수 있다. 회사는 현재 논바인딩 계약을 공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케어젠은 2015년 상장 이후 단 한 차례도 유상증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신약 임상 과정에서도 자체적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비용을 충당해왔고, 상장 후 배당도 꾸준히 실시했다"며 "앞으로 성과로 신뢰를 증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