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28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이 상정될 전망이다. 특히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과 동일 성분으로 만드는 '제네릭(복제약)'의 약가를 낮추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제약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네릭 약가 인하가 장기적으로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 인하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개편안은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심의되며, 시행 시점은 내년 7월이 유력하다.

정부가 약가 개편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건강보험재정 부담을 줄이고 국내 제약산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다.

이재명 정부 대선 공약을 총괄했던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보건의료수석전문위원은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포럼에서 "제도에 편승해 연구개발(R&D)에 소극적인 기업에는 분명한 신호를 주려는 것"이라며 "절감되는 재정은 R&D 인센티브로 재투입해 혁신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네릭은 국내 급여의약품의 약 90%를 차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6월 발표한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급여의약품 등재 품목은 2만1962개로 이 가운데 단독 성분으로 등재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2474개(11.3%)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동일 성분의 제네릭이 함께 등재된 구조다.

전체 약품비에선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복지부가 지난해 공개한 '제네릭 의약품 약가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약품비 25조9000억원 중 제네릭 처방액은 53%인 13조6000억원이었다.

서울 시내의 한 약국

◇'계단식 가격표' 손본다…정부, 산정률 조정 가능성

현재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 가격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에서 책정된다. 생동성 시험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등록된 원료의약품(DMF)을 사용하는 2개 기준요건을 충족하면 오리지널 가격의 53.55%로 가격이 결정된다.

이 조건을 100% 충족하지 못할 경우, 산정률 53.55%에 0.85를 곱해 단계적으로 15%씩 가격이 깎인다. 요건을 충족할수록 비싸고, 충족하지 못할수록 더 싸지는 '계단식 가격표'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 산정률(53.55%)을 50%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업계에 방향성만 공유했을 뿐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 혼선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정률이 최대 40%까지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2012년 일괄약가인하제도 시행 당시 산정률을 68%에서 53.55%로 14.45%포인트 낮춘 바 있다.

정부는 매출액의 일정 규모를 R&D에 투자하는 기업 등 일부에 한해 현행 약가 수준을 3년간 우대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3년 뒤 우대가 종료되면 사실상 모든 제네릭에 새로운 인하율이 일괄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제네릭 약가가 유예 기간 이후 한꺼번에 내려가면, 결국 오리지널 약도 특허 만료 시점에 대폭 인하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이미 고환율로 원재료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에서 발췌한 국내 약가제도 변천 표./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2년 악몽' 재현될라…업계, 비대위 꾸려 대응

제약사들은 제네릭 약가 하락이 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해 발간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2012년 일괄약가인하제도 시행 당시 해당 기업들의 매출은 2013년 평균 34% 감소했으며, 2019년까지도 26~51.2% 수준의 감소세를 유지했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신약 개발을 위한 R&D 투자 여력은 오히려 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산 신약 개발에는 평균 15년 이상, 2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여력이 되는 기업 상당수는 제네릭 수익을 신약 개발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R&D 투자가 불가능한 중소 제약사들은 일자리가 줄거나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업계는 제네릭 수를 줄일 경우 매년 반복되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한다. 독감이 유행 중인 현재, 약국가는 타이레놀 등 주요 품목의 공급이 다음 달 중순쯤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지난 24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 5개 단체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이를 통해 제네릭 약가 인하가 초래할 R&D 투자 차질, 공급 안정성 문제 등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정부가 구체안을 발표하면 정량적 영향 분석을 바탕으로 대응 논리를 제시할 계획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이 건보재정 절감에만 치우치지 않고, 혁신 신약 개발에 대한 보상 체계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약가 저평가,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까지 흔든다"

업계는 현행 약가제도가 혁신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점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이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현재는 '비슷한 효과를 가진 기존 약들의 평균 가격'으로 약가가 결정된다"며 "국산 신약이 저평가된 약가 체계 속에 묶이면 SK바이오팜(326030)의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처럼 해외에서 먼저 임상과 출시가 진행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혁신 신약의 혜택을 정작 한국 환자가 가장 늦게 누리게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 3월 '혁신형 제약기업(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복지부 선정)'이 개발한 신약에 대해 약가 우대를 해주는 제도를 신설했으나, 제도 시행 이전에 등재를 마친 신약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웅제약(069620)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가 한 예다. 이 약은 2022년 급여 등재됐는데, 약가가 기존 치료제 평균보다 약 10% 낮게 정해졌다.

이렇게 낮게 책정된 약가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은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2018년 중국, 2019년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의 참조가격국으로 지정돼, 한국의 약가가 해외 약가 결정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 내 펙수클루의 약가는 한국 약가가 그대로 반영돼 900원대에 책정됐다. 일본 다케다의 보신티 등 유사 계열 약가는 중국에서 2000원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