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알츠하이머 연구 및 치료 센터에서 알츠하이머병 검사를 위해 진행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뇌영상. /로이터

비만 치료제가 체중 감소뿐 아니라 치매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임상시험에서는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38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두 차례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세마글루타이드와 가짜약(위약)이 알츠하이머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24일(현지 시각) 밝혔다.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이다. GLP-1은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췌장에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은 억제한다. 원래 혈당을 낮추는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으로 개발됐다가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 주사제인 위고비로 발전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환자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이번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55~85세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도 치매를 앓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들을 무작위로 1대 1로 나눠 각각 가짜약과 먹는 세마글루타이드 14㎎을 하루에 한 번씩 투여하면서 156주간 관찰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 치료가 알츠하이머병 관련 바이오마커(생체지표) 개선을 가져왔으나, 이는 질병 진행 지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마틴 홀스트 랑게(Martin Holst Lange) 노보 노디스크 최고과학책임자(CSO) 겸 연구개발 부사장은 "알츠하이머병 치료 분야에서 충족되지 않은 의료 수요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성공 가능성이 낮음에도 세마글루타이드의 잠재력을 탐구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세마글루타이드가 알츠하이머병 진행 속도 저하에 효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여전히 제2형 당뇨병, 비만과 관련 질환을 가진 개인들에게 계속해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아직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지는 않았다. 주요 결과는 먼저 다음 달 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되는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 학회(CTAD)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전체 결과는 내년 3월 알츠하이머병 및 파킨슨병 학회(AD/PD)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앞서 세마글루타이드가 여러 가지 암과 심혈관 질환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의료 현장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나왔다.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치매 위험을 33~43% 낮춘다"고 '미국의사협회지(JAMA) 신경학'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4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당뇨병 진단을 받은 50세 이상 환자 39만여 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치료제를 사용한 그룹은 혈당강하제를 사용하는 그룹보다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해 치매 발병률이 34% 낮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연구는 의료 기록을 분석해 비만약 복용 그룹에서 치매 발생이 적었음을 확인한 것이지, 이번처럼 환자를 무작위로 나눠 가짜약과 비만약을 투여하고 치료 효과를 보는 임상시험을 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GLP-1 계열 비만약이 퇴행성 신경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일단 질환이 진행된 후에는 도움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영국 알츠하이머 연구소의 수잔 콜하스(Susan Kohlhaas) 박사는 이번 결과가 알츠하이머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하스 박사는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알츠하이머병이 여러 서로 다른 생물학적 과정에 의해 유발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며 "단일 접근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손상을 준다. 타우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신경세포 안에서 인산(燐酸)기가 달라붙어 변형되면 서로 엉킨 덩어리가 되고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참고 자료

Novo Nordisk, https://www.novonordisk.com/news-and-media/news-and-ir-materials/news-details.html?id=916462

JAMA Neurology(2025), DOI :https://doi.org/10.1001/jamaneurol.2025.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