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에서 인적분할된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가 24일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했다. 업계는 이번 분할·재편을 "삼성 바이오 2.0의 출발점"으로 본다. 생산 중심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달리,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한 전략적 교두보 역할을 맡으면서 그룹 바이오 사업이 재정립됐기 때문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중간 지주사 성격의 회사로, 직접적인 사업을 하지는 않는다. 주 수익원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배당이 될 전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장성과 배당 여력은 충분하지만, 현금흐름과 차입 부담을 감안하면 모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무한정 공급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재무적 딜레마가 제기된다.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는 이날 61만1000원에 거래를 시작한 뒤 오전 10시 8분 기준 49만7000원으로 내려 11만4000원(18.66%) 하락하며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인적분할 직후에는 모회사와 신설 법인의 가치가 재산정되는 과정에서 단기 수급 불안이 발생해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약 개발 사업은 성공 확률이 낮고 투입 비용이 장기간 누적되는 특성상 단기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신약 개발로 이익 변동성이 큰 에피스 사업부가 분리된 만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는 오히려 안정적인 우상향 흐름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 신약 개발 삼각 구조 구축…전략·기술·상업화 '맞춤형 분업'
삼성의 목표는 기초 기술 개발부터 임상·허가까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이어지는 '삼성식 신약 개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지주회사 형태로 자회사 지분 관리와 신규 투자 사업을 전담하며, 이달 1일 출범과 동시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편입하고, 11일에는 신약 플랫폼 연구 조직 에피스넥스랩을 신설했다.
요약하면 삼성에피스홀딩스(전략)–에피스넥스랩(플랫폼)–삼성바이오에피스(개발·임상·허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에피스넥스랩이 플랫폼 기술을 만들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이를 바탕으로 직접 신약을 개발하거나, 외부에 기술을 이전(라이선스 아웃)하거나, 공동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업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의 기반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지난 13년간 축적한 바이오시밀러 성과가 있다. 회사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11종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출시했고, 지난해 매출 1조5377억원·영업이익 4354억원으로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냈다.
신설된 에피스넥스랩은 우선 펩타이드 기반 플랫폼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짧게 연결된 구조로, 약물 전달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신약 후보를 발굴하는 데 쓰인다. 다만 개발 방향의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분야에서 활용할 이중항체 플랫폼 개발도 검토 중이다. ADC는 독성 조절·약물전달기술·대량 생산공정이 모두 요구되는 고난도 영역으로, 단일 파이프라인의 임상 비용만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지주 내 '현금 엔진'…성장·재원 부담 동시에
관건은 재원 확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분할 과정에서 확보한 1000억원을 에피스넥스랩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1000억원이 초기 플랫폼 구축에는 충분하나,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에는 부족한 규모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형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1000억원은 핵심 연구 인력 확보, 연구 인프라 구축, 펩타이드 플랫폼의 개념 검증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기에 충분하지만 플랫폼의 완성과 후보물질 창출, 라이선스 아웃을 포함한 상업화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포괄하기에는 부족하다"며 "플랫폼의 가치화를 이루고 ADC 플랫폼 개발과 같은 모달리티 영역으로 확장하려면 추가 자금 투입과 전략적 자원 배분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다른 조달 수단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자산을 담보로 한 은행권 대출도 어렵다.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인적분할 당시 부동산 자산을 승계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조달 역시 삼성물산·삼성전자 등과 연결된 지배구조 특성상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이유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재원을 보탤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말 기준 미처분 이익잉여금 7037억원을 보유하고 있어 배당 여력이 충분한 편이다.
성장세도 이어가고 있다. 매출은 2022년 9414억원에서 지난해 1조5377억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315억원에서 4354억원으로 확대됐다. 올해 3분기 매출은 4410억원, 영업이익은 12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07억원, 611억원 증가했다.
다만 현금성 자산 578억원, 총차입금 4224억원 등 자체 재무 부담도 적지 않고, 향후 20개 이상 신제품 출시와 ADC 신약 개발 등 자체 R&D 투자도 계속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앞서도 경상연구비를 2023년 631억원에서 2024년 1106억원으로 75.3% 늘린 바 있다.
이에 시장의 관심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상장 여부로 쏠리고 있다. 비상장사 특성상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향후 5년간은 거래소와 사전에 합의된 최소 유예 기간이라 상장이 불가능하다"며 "그 이후에는 필요에 따라 상장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초기 재원 부족 우려에 대해서는 "1000억원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처음에는 비용을 매우 절제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