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 /뉴스1

성분명 처방을 놓고 의약(醫藥) 갈등이 거세지자 제약사들 셈법이 복잡해 졌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상품명 대신 성분명으로 의약품을 처방하는 것이다. 의사가 타이레놀(상품명)이 아닌 아세트아미노펜(성분명)으로 처방하면 약사는 해당 성분 의약품 중 하나를 골라 환자에게 제공한다.

약사 단체는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면 주요 의약품을 원활하게 공급해 환자 편의를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의사 단체는 성분명 처방이 진료 행위를 침해한다며 반대한다.

제약 업계선 "의약품 영업 구조가 바뀔 수 있다"면서 "의사와 약사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수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의 성분명 처방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회도 성분명 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의 약사법·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징역, 벌금 같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약사가 처방전에 기재된 의약품이 약국에 없으면 예외적으로 같은 성분으로 대체할 수 있다. 다만 의사에게 대체 조제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꺼리는 분위기다.

대한약사회는 보다 적극적인 성분명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허가를 받은 오리지널 약이나 복제 약은 치료 효과가 동등하기 때문에 성분명으로 처방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일본, 호주 등 해외는 성분명 처방을 권장하거나 의무화하고 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애매해진다며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 대회를 열고 "성분명 처방 강행은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가 하는) 의약 분업 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약사들의 영업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제약사 영업사원은 보통 대형 종합병원과 개원의, 약국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고 영업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약품을 선택하는 권한이 의사에서 약사로 분산되면 그만큼 영업해야 하는 대상이 늘어난다"면서 "영업 지형이 뒤바뀔 수 있다"고 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자체 영업 사원을 확대하거나 CSO(위탁 영업)을 활용하는 방안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위탁 영업은 제약사가 외부에 영업을 맡기고 처방에 따른 판매 수익 일부를 떼주는 것이다. 제약사는 대신 신약 연구와 생산에 집중할 수 있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의사들은 오리지널 약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지만 약사는 비교적 그렇지 않다"면서 "오리지널 약을 주로 공급하는 상위 제약사는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복제 약을 공급하는 중소 제약사에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업계는 성분명 처방 도입으로 불법 리베이트(뒷돈)가 근절되길 기대한다. 의사들이 제약사에서 금품을 받고 특정 의약품을 선택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 리베이트는 의약품 값을 부풀리고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한다는 문제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는 "(상품명 처방은) 의사가 환자 상태보다 리베이트를 많이 준 제약사의 약을 우선 처방할 가능성이 있어 효능이 낮거나 필요 없는 약이 투여될 수 있다"면서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금전적 이해로 환자 치료를 결정해 의료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한다"고 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사에서 약사로 리베이트가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리베이트는 제도나 규제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받는 사람 의지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