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코스닥 시장에서 국내 이중항체 전문 기업 에이비엘바이오(298380)가 장중 한때 19만5500원에 거래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12일, 13일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시가총액은 단숨에 약 3조6000억원 늘었고, 전체 시총은 9조원에 이르렀다. 지난 5월 시총 3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반년 만이다.

올해 들어 글로벌 제약사와 연달아 체결한 '메가딜' 덕분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12일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최대 3조8070억원 규모의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이전 및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에이비엘바이오는 계약금 4000만달러(약 585억원)를 미국 반독점개선법(HSRAct) 등의 행정절차 완료 후 10 영업일 이내에 수령할 예정이다. 계약금에 더해 개발·허가·상업화 마일스톤(경상 기술료)으로 최대 25억6200만달러(약 3조7487억원)를 받을 수 있는 자격도 갖는다. 제품 순매출에 따른 단계별 로열티도 지급받게 된다.

플랫폼 기술은 쉽게 말해 기존 의약품 개발 과정에 적용해 다수의 신약 후보 물질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이중항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항원을 동시에 인식해 결합하도록 설계된 단백질로, 이중항체 플랫폼은 이러한 항체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조합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기술이다.

이번 계약 대상인 '그랩바디-B'는 약물이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BBB는 외부의 유해 물질이 뇌로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보호막 역할을 하지만,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의 경우 약물 전달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랩바디-B는 이 장벽을 선택적으로 통과하도록 설계돼,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그랩바디-B는 여러 타깃 후보물질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일라이릴리가 보유한 중추신경계(CNS) 파이프라인 가운데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 같은 항체 치료제뿐 아니라 유전자 기반 치료제까지 최소 다섯 가지 이상이 적용 후보군으로 꼽힌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에이비엘바이오의 플랫폼이 일라이릴리의 뇌 질환 치료제 개발 전략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키순라에 그랩바디-B를 접목할 경우 효능과 안정성 개선은 물론 특허도 연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현재 그랩바디 플랫폼의 글로벌 위상이 매우 높다"며 "비만과 근육 질환 등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영역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조선DB

◇두 번째 '메가딜'로 입증된 기술력…그랩바디 플랫폼 사업화 본궤도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4월 영국 제약사 GSK와 4조1104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랩바디-B를 활용해 새로운 타깃의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상업화할 수 있는 독점 권리를 이전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으로 총 7710만파운드(약 1481억원)를 받았으며, 이 중 계약금은 3850만파운드(약 739억원)였다. 성과 달성에 따라 최대 20억6300만파운드(약 3조9623억원)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보다 앞선 2022년에는 프랑스 사노피와 10억6000만달러(약 1조272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으로 7500만달러(약 900억원)를 수령했다. 당시 계약은 그랩바디 플랫폼을 적용해 도출된 후보물질의 개발 권리를 이전하는 방식이었다.

사노피 계약이 '개별 후보물질' 이전 중심이었다면, GSK 계약은 '플랫폼 사용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규모 면에서도 GSK 계약이 한층 컸다. 이후 일라이릴리 계약까지 이어지며, 에이비엘바이오의 플랫폼 사업화 전략이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개발한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 시리즈 개요도. 그랩바디 플랫폼은 타깃에 따라 '그랩바디-B' '그랩바디-T' '그랩바디-I'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그랩바디-T는 종양 미세환경에서 T세포를 더 잘활성화해 암을 공격하도록 만드는 항체를 추가하는 기술이다. 그랩바디-I는 암세포 표면에 있는 PD-L1 타깃 항체에 면역 조절 항체를 더 붙여 면역항암제를 구성하는 기술이다./에이비엘바이오

◇미국 법인 네옥 바이오 설립…글로벌 ADC 개발 시동

에이비엘바이오는 미국 법인 네옥 바이오(NEOK Bio) 설립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네옥 바이오는 에이비엘바이오가 100% 지분을 보유한 독립 법인으로, ABL206과 ABL209 두 가지 이중항체 기반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의 임상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독자적으로 수행한다. 글로벌 신약 개발과 상업화의 주도권을 네옥 바이오가 직접 쥔다는 의미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올해 안에 미 식품의약국(FDA)에 이 두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제출하고, 내년 중반 임상 1상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ADC는 암세포를 표적하는 항체와 강력한 항암 화학물질을 링커(linker)로 연결한 차세대 항암제다. 항체가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만 정확히 찾아가 약물을 전달하면, 약물이 그 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정상 세포에 대한 부작용을 줄인다. 시장조사업체 이밸류에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ADC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14조5500억원에서 2028년 약 40조74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는 "ABL206과 ABL209의 임상 1상 진입이 임박함에 따라 개발 권리를 네옥 바이오에 이전했다"며 "네옥 바이오는 글로벌 시장에서 임상 개발,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 주요 전략을 자체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일스톤은 '조건부' 지급…기술수출 기대 선반영 우려도

다만 에이비엘바이오의 주가 급등이 기술수출 계약 총액에 대한 기대를 미리 반영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부분의 기술수출 계약에서 마일스톤은 임상 단계별 성공 여부에 따라 지급되는 조건부 대가이기 때문에, 신약 개발이 중도에 좌초될 경우 계약금 외 추가 수익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한미약품(128940) 사례가 보여주듯, 수조원대 기술수출 계약이 발표되었지만 실제 수령액은 공시 규모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친 경우도 있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개발 마일스톤뿐 아니라 향후 받을 수 있는 판매 마일스톤과 로열티까지 미래 실적에 포함해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술수출 산업은 미래 성과를 현재 가치로 당겨오는 구조"라며 "마일스톤은 미래 현금흐름으로 고려하되, 위험도가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이번 주가 급등이 이러한 위험을 적절히 반영했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상장 이후 꾸준히 기술이전 성과를 내왔고 자체 개발 파이프라인도 보유하고 있어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면서 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는 만큼, 회계적 과대평가와는 거리가 있다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현재 회사가 자체적으로 임상을 진행중인 물질은 임상 1상까지"라며 "금융감독원 지침에 따라 임상 3상 이전 단계는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