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플랫폼 기술을 중심으로 연이어 기술수출 계약을 따내면서 연간 누적 규모가 역대 최대인 18조원을 넘어섰다.
신약 후보물질뿐 아니라 여러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 수출을 이끈 덕분이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도 추가 성과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7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총 18조111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존 최대 실적이었던 2021년 13조8047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가파른 증가세를 이끈 주역은 에이비엘바이오(298380), 알테오젠(196170), 리가켐바이오(141080), 알지노믹스 등 플랫폼 기술 기반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이 올해 체결한 계약 규모만 약 13조원에 달한다. 신약 후보물질은 한 기업에만 독점으로 기술이전할 수 있지만, 플랫폼 기술은 여러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할 수 있어 누적 성과가 빠르게 쌓인다.
대표적인 기술수출 사례로는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가 있다. 혈뇌장벽(BBB)을 투과해 항체를 뇌까지 전달하는 기술이다. 지난 4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4조1000억원 규모로 이전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미국 일라이 릴리에 3조8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올해만 누적 8조원 규모의 성과다.
알테오젠은 링거로 맞는 정맥주사(IV)를 간단한 피하주사(SC)로 바꿔주는 플랫폼 '하이브로자임(ALT-B4)'을 개발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에 최대 1조9000억원 규모로 기술을 이전했다. 이로써 미국 머크(MSD), 일본 다이이찌산쿄 등과의 계약을 포함한 누적 기술수출 금액이 11조원에 육박한다.
'암세포 유도미사일'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기업 리가켐바이오도 항체에 약물을 정밀하게 붙여 약효를 내도록 하는 플랫폼 '콘쥬올(ConjuALL)'을 일본 오노약품공업에 이전하며, 총 기술수출 계약 규모가 누적 10조원을 넘어섰다. 이들 세 회사가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벌어들인 기술수출 규모는 약 30조원으로, 지난해 국내 전체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31조원)와 맞먹는다.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는 비상장사 알지노믹스도 일라이 릴리와 1조9000억원 규모의 리보핵산(RNA) 치료제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 외에도 기술평가 계약을 체결한 플랫폼 기술 기업들의 최종 결과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펩트론(087010)은 지난해 10월 일라이 릴리와 장기지속형 펩타이드 주사제 개발을 위해 '스마트데포(SmartDepot)' 기술의 평가 계약을 체결했으며, 다음 달까지 공동연구를 마친 뒤 본계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디앤디파마텍(347850)과 지투지바이오(456160)도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에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경구용(먹는) 펩타이드 플랫폼 '오랄링크'를 활용해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기반 비만 신약 후보물질을 미국 화이자의 인수가 결정된 멧세라에 기술이전했다.
지투지바이오는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 '이노램프'를 활용해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데 이어, 9월에는 유럽 글로벌 제약사(미공개)와 추가 연구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의 공동연구가 기술수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기술은 신약 후보물질보다 적용 범위가 넓어 글로벌 제약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연말까지도 추가 기술수출 계약 소식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