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국내 중견 제약·바이오 기업 곳곳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창업자 일가의 경영 승계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인사·조직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동화약품(000020)의 50대 이상 임원이 최근 여럿 물러났다. 홍보를 이끌던 이택기 상무, 이인덕 해외 부문 총괄 부사장을 비롯해 주로 50세 이상 임원이 이달 부로 퇴직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택기 상무를 비롯해 일부 퇴사한 건 맞는데,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인덕 부사장, 이택기 상무 등이 떠난 자리는 현재 공석으로, 회사 내부 직원들은 곧 영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창업자 일가 4세 윤인호(41) 대표이사 체제 하의 대대적인 조직 변화란 해석이 나왔다. 윤 대표는 윤도준(73) 동화약품 회장 장남으로 지난 3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3년 8월 동화약품 재경부에 입사한 뒤 여러 지위를 거쳐 12년여 만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올랐다. 현재 이 회사는 전문경영인인 유준하 대표와 함께 유준하·윤인호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 개편에 대해 "윤인호 대표가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임원을 교체하는 데 초점을 둔 것 같다"며 "조직 내 세대교체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너 단독 대표로 경영 전면에

그간 업계에서 창업자 일가의 경영 승계 과정에서 전문경영인과 창업자 일가가 함께 대표를 맡는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경영 안정화를 꾀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최근 오너 일가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한 기업들도 있다.

일양약품(007570)의 경우 기존 김동연(75) 대표와 정유석(49) 대표 공동 체제로 운영됐으나, 지난달 17일부로 김동연 대표의 사임으로 정 대표 단독 체제로 전환했다.

정 대표는 창업주 고 정형식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도언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 3세다. 그는 2006년 마케팅 과장으로 일양약품에 입사했다. 이후 2012년 해외 사업·마케팅 본부장, 2018년 부사장을 거쳐 2023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회사가 경영 체제를 바꾼 데는 앞서 규제 당국 제재에 따른 후속 조치다. 앞서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일양약품의 중국 현지 법인의 회계 처리 방식이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며 대표이사의 해임을 권고하고 6개월 직무정지 제재를 내렸다.

이에 공동 대표 중 김 전 대표가 회사 회계 위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격이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김 전 대표는 1950년생으로 1976년 일양약품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일양약품에서만 재직해, 올해로 18년째 대표를 맡아 제약업계 장수 전문경영인으로 통했다.

보령(003850)은 지난 3월에 이사회를 열고 김정균·장두현 각자 대표 체제에서 김정균 단독 대표 체제로 변경했다. 이어 전문경영인인 장두현 전 대표는 지난 9월 메디컬 에스테틱 전문 기업 휴젤(145020) 대표(CEO)로 신규 선임돼 적(籍)을 옮겼다.

김정균 대표는 보령제약(현 보령) 창업자 김승호 명예회장의 손자다. 그는 2014년 보령에 입사해 전략기획팀, 생산관리팀, 인사팀장, 경영기획실장 등을 거쳐 2022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회사는 김정균 단독 대표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보령의 성장 전략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책임 경영이 필요한 시기임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 차바이오그룹은 세대교체 신호탄

그런가 하면, 세대교체를 본격화한 곳도 있다.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은 지난 9월 오너 2세 차원태(45) 전 차의과학대학교 총장을 그룹 부회장 겸 차바이오텍의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로 임명했다.

차 부회장은 차바이오그룹을 일군 창업자 차광렬 차병원·차바이오그룹 글로벌 연구소장의 장남이자, 고(故) 차경섭 차의과학대학교·차병원 명예 이사장의 손자다. 그는 앞서 그룹 내 인턴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밟아왔다. 이후 미국 LA 할리우드차병원을 운영하는 차헬스시스템즈의 최고운영책임자, 할리우드차병원 최고전략책임자 등을 거쳐 차의과학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이번 인사에 대해 그룹 내 한 관계자는 "경영 수업을 밟아온 차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라, 세대교체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차바이오그룹은 앞으로 차 부회장이 그룹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를 강화하고, 그룹 계열사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밝혔다. 그룹 내엔 차바이오텍(085660), CMG제약(058820), 차백신연구소(261780) 등 상장사와 차헬스케어, 차메디텍, 차바이오F&C, 차케어스, 서울CRO,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등의 계열사가 있다.